날마다 죽는자

그리스도인의 고난(苦難)

고명한자 2011. 9. 6. 16:28

그리스도인의 고난(苦難)

 

 

롬8:17,18.

 

 

17,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16,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 할 수 없도다.

 

 

하나님의 자녀는 창세전에 예정하여 택하시고 각 시대에 세상에서 부르시어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으로 구속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얻어 성령 안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이 영원히 온전케 된 자들입니다.(엡1:4.골1:22,28.히10:14) 이들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진 성도로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그 안에서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고 주님의 복음을 전하게 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과 주의 말씀과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가 있게 하셨습니다.(롬15:18.고전1:2,5,6.갈5:6.엡3:7.골1:29.살전1:3,5:13)

 

 

이에 예수께서 성도 안에 계신 확실한 증거가 있게 하셨습니다. 이는 영원 전부터 감추었던 비밀로 이제 성도들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으로 성도 안에 계신 그리스도이시니 영광의 소망입니다. 우리가 이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면하고 모든 지혜로 가르치는 것은 각 사람을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골1:26-29) 이는 말씀을 선포하는 자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는 주님의 성령으로 그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게 됩니다.(요3:36.롬4:20,21,25.고후13:5.빌2:13.요일5:11,12.)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어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은혜로 주신 영광을 찬미하게 하셨습니다.(엡1:5,6) 또 하나님의 자녀로 그 나라의 유업이 있게 하셨는데 곧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가 되었고 함께 지체가 되어 함께 약속에 참여한 자가 되었습니다.(엡3:6) 이는 주님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공동 상속받는 권한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후사가 되는 것도 은혜에 속하기 위해 믿음으로 되게 하였으므로 이는 그 약속을 믿는 모든 후손에게 굳게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롬4:16)

 

 

이를 위해 하나님아버지께서 그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성령을 주심으로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시고 우리에게 성령을 풍성히 부어주셔서 우리로 그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함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셨습니다.(딛3:5,7.히1:2) 이에 우리가 주님과 함께 그 나라의 유업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영광을 얻게 되었으므로 고난도 함께 받아야합니다.(롬8:17)

 

 

그러나 그리스도인들 뿐 만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고난과 시험과 환난 받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다 괴로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것으로 인해 날마다 죽는다고 말했고 이 땅에서 살 소망까지 끊어졌다고 말했습니다.(고전15:31) 그러나 우리는 바울이 말한 대로 주님의 영광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아야한다는 말씀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모든 고난당하는 데는 그 원인이 있습니다.

 

 

1) 죄를 짓고 당하는 고난.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취하여 범죄하고 에덴의 동산에서 세상으로 내어쫓겼으며 그 후손들이 세상에서 힘든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 왕과 그 아들 솔로몬은 인생을 말하기를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말했습니다.(시90:10.전2:23) 그 원인을 다윗은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 두셨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일식 간에 지나간다고 말합니다.(시90:9)

 

 

그는 또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하였기 때문에 수고로 저희 마음을 낮추셔서 엎드러지게 하시고 돕는 자가 없게 하셨다고 말합니다.(시107:10-12) 그렇습니다. 성경에서는 믿음의 선진들도 주님의 뜻을 저버리고 범죄 할 때는 미련하여져서 저희 범과와 죄악의 연고로 고난을 당하게 하셨으며 그 대적에게 쫓기어 저희가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할 성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르고 그 영혼이 속에서 피곤하게 하셨습니다.(시10:4,17)

 

 

다윗은 인구조사를 하고 범죄 해 그 땅에 삼일 온역으로 백성들을 칠만이나 잃어버리고 또 충복 우리아의 아내를 범하고 우리아를 음해하여 범죄 함으로 그에게 시험과 고난이 따랐으며 또 압살롬 자기 아들에게 왕위를 찬탈 당할 위경에 까지 갔으며 그가 쫓기는 자의 신세가 되어 수모를 겪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역사의 인물들과 또 예수님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과 이스라엘백성들 뿐만 아니라 오늘날 기독교의 종교인들 모두가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삼하24:1-15)

 

 

이들은 육신에 속해 정욕으로 행하고 죄와 악을 행함으로 자신이 세상에 속하고 어둠에 속한 것을 나타내는 사람들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보지도 못한 마귀의 자녀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데 비극이라는 것입니다.(요일3:6,10) 이들은 스스로 겸손한 것 같이 행동하고 자기를 위장하지만 속으로는 죄악의 결과로 갈등과 고통으로 수난을 당하며 겸손히 천사숭배로 몸살을 앓고 자기 유업의 상을 이미 타버리고 허무하게 바람을 잡으려는 타락한 종교인으로 전락한 가운데 있습니다.(골2:18,19)

 

 

2) 남에 일에 간섭함으로 당하는 고난.

 

 

압살롬이 그 아비 다윗 왕을 반역할 당시 그 반란에 가담한 다윗왕의 모사였던 “아히도벨”은 압살롬의 초청을 받아들여 그에게 돌아옴으로 많은 백성들이 반역에 가담하게 했고 그 결과로 다윗 왕이 예루살렘성에서 도망하게 되었습니다.(삼하12-14) 그러므로 압살롬과 아이도벨은 예루살렘에 이르러서 압살롬이 아이도벨에게 모략을 내라고 말했으며 그는 다윗왕의 후궁들과 압살롬 왕이 동침하여 이스라엘의 왕을 계승한 것을 공표함으로 이스라엘의 왕 됨을 선포하도록 했습니다.(삼하16:20-22)

 

 

당시 아이도벨의 베푸는 모략은 하나님께 물어 받은 말씀과 같게 여길 정도로 신망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다윗 왕도 압살롬에게도 같게 여길 정도로 인정을 받았습니다.(삼하16:230) 그는 또 그 아비 다윗 왕을 대적하여 백성들의 마음을 도적한 압살롬을 도와 다윗 왕을 추적하여 죽이려는 모략을 스스로 제안하여 오늘밤에 사람 일만 이천 명을 주어 다윗의 뒤를 따라가 그가 곤하고 약할 때에 습격하여 다윗을 따르는 백성들은 도망하게 하여 압살롬에게 돌아오게 하고 다윗 왕만 쳐서죽일 생각을 제안했습니다.(삼하15:5,6,17:1,2)

 

 

그 일을 당시 장로들도 옳게 여겼으나 압살롬은 아이도벨의 좋은 모략을 버리고 당시 다윗왕의 첩자인 신복 후새가 압살롬에 나서서 다윗 왕과 그를 따르는 자들이 용사로 병법에 익숙한 자들이기 때문에 백성들과 자지 않고 기다리다 반격하면 실패하고 압살롬의 군대가 실패했다고 백성 중에 소문이 날 것을 말하며 자기의 모략은 온 이스라엘을 모아 압살롬 왕이 친히 전쟁에 나갈 것을 제안하니 이를 압살롬과 온 이스라엘이 후새의 말을 좋게 여겼습니다.

 

 

이것은 아이도벨의 좋은 모략을 파하기로 한 여호와하나님의 뜻이었고 작정하신 것이었습니다. 그 후 아이도벨은 자기의 모략이 받아드려지지 않아 압살롬이 패하게 된 것을 알고 자기고향으로 돌아와 집안을 정리하고 스스로 목을 매어 자결하였습니다. 이것은 불의에 동조한 자들이 당하는 고난이며 그 결과는 멸망의 길입니다.(삼하17:23)

 

 

또 이와 같은 인물 중 유다의 여호사밧 왕은 다윗의 길로 행하여 바알에게 구하지 않고 오직 그 부친 아사왕의 길을 따라 여호와께 구하고 그 계명을 지켜 북이스라엘의 행위를 좇지 않았습니다. 그는 전심으로 여호와의 도를 따르고 산당과 아세라 목상들을 유다에서 제하여 주께서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해주셨으며 유다의 무리가 그에게 예물을 드려 여호사밧 왕의 부귀와 영광이 극했다고 성경은 말했습니다.(대하17:3-6)

 

 

그런데 여호사밧 왕이 사마리아에 있는 사돈 북이스라엘 왕 아 합에게 내려가자 아합 왕이 그에게 후히 대접을 하고 우리가 연합하여 기르앗라못(아람) 치기를 권유하자 여호사밧 왕은 대답하기를 나는 당신과 일반이요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일반이니 당신과 함께 싸우겠다고 대답하였습니다.(대하18:1-3) 유다의 여호사밧 왕은 야훼신앙의 신실한 신앙의 소유자이며 유다 나라는 다윗자손의 손으로 다스리는 여호와께서 기르시는 여호와의 나라입니다.(대하13:8)

 

 

그러므로 여호사밧 왕은 하나님의 종 신실한 미가야선지자의 예언에 따라 돌이켰어야함에도 어둠에 속한 이스라엘의 아합 왕의 일에 공조함으로 영적인 눈이 멀고 귀가 닫혀서 그와 멍에를 같이함으로 고난의 황당한 일에 빠지게 됩니다. 이들은 거짓선지자들에게 묻고 그 전장에 나가게 되었는데 여호와하나님께서는 그 전쟁을 위해 악한 미혹하는 영으로 선지자들에게 들어가 거짓말을 하여 그들이 전쟁에 나가 악한 아합 왕을 기르앗라못에서 죽게 하시려고 작정하셨습니다.(대하18:19-22)

 

 

드디어 이스라엘의 아합 왕은 변장하고 여호사밧 왕은 왕복을 입고 전쟁에 참여하기로 하고 나갔으나 아람 군데가 유다의 여호사밧 왕을 이스라엘 왕으로 착각하고 싸우려하자 여호사밧 왕이 소리 지르자 여호와하나님께서 그를 도우셨으며 또 아람군인들을 감동하셔서 저들을 떠나가게 하셨습니다.(대하18:31,32) 그들이 그가 이스라엘 왕이 아닌 것을 보고 쫓기를 그치고 돌이켰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우연히 활을 당겨 이스라엘 왕의 갑옷 쏠기를 쏘았는데 그가 부상을 당해 저녁때까지 적군을 막다가 해질 때에 아합 왕은 전쟁터에서 죽었습니다.(대하18:34) 여호사밧 왕은 평안히 예루살렘에 돌아왔으나 선견자 예후가 왕에게 나가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책하되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이 가하냐?” 고 질책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 로서 왕에게 진노하심이 임 하리이다, 라고 말했습니다.(대하19:1,2)

 

 

그 후 그는 여호와를 잘 섬긴 자였으나 산당을 폐하지 못하여 백성들의 마음이 여호와께 돌아오지 못하게 했으며 나중에 북이스라엘의 악한 아하시야 왕과도 교제하여 함께 배를 지어 다시스로 무역을 하려 하였으나 왕이 악한 왕과 교제함으로 그 뜻을 여호와께서 이루지 못하게 하셨습니다.(대하20:33-37) 이와 같은 일들은 주를 경외하는 백성들이 세상에 속하고 육신에 속해 있는 자들과 교제함과 어떤 일을 추진함에 있어 “어두운 일에 참여하지 말아야할 것”을 말하며 저들과 같은 멍에를 메지 말아야할 것을 경계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이와 같이 주를 경외하지 않고 믿지 않는 자와 함께 일하는 것에 대하여 이는 악한 자를 돕는 것”이며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자를 사랑함으로 행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고 세상 것을 따르는 자들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라고 주께서 말씀하십니다.(대하19:2) 그러므로 이와 같이 남의 일에 간섭하여 원치 않는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3) 신앙의 연단을 위한 고난.

 

 

하나님을 신앙하는 이들은 누구나 고난을 겪게 됩니다. 많은 이유가 있지만 데만 사람 엘리바스는 말하기를 인생은 고난을 위해났다고 말하며 불티가 위로 날리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욥5:7) 이는 자기의 의지와 소원과 소유인 물질적인 것이 연기와 같이 날아간다는 표현입니다. 또 시편의 다윗은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119:67) 우리가 고난당하면 마음이 약해지고 육신적인 의지를 주님께 드려서 버리게 되고 주님을 따르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지켜 신뢰하게 되는데 이때 주님과 더욱 친밀한관계가 되고 주님에 대하여 잘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고난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고 말하며 이로 인해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다고 말합니다.(시119:71) 우리가 평상시에는 미련하여 자기 의를 주장하고 자신을 들어내기 쉬운데 고난당하면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주님의 말씀을 따름으로 하나님의 의를 구해 영적인 축복을 받아 유익하게 되며 주의 말씀을 배워 의롭게 됩니다.

 

 

이에 주를 따름에 있어 주님의 뜻을 이루려하면 고난의 풀무에 집어넣어 단련시켜 정금 같은 신앙의 연달한 소유자가 되게 하십니다.(욥23:10)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연단하십니다. 연단의 목적은 은에서 찌기를 제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세상에 속한 육적인 자아를 제하는 것으로 하나님과 우리 자신에게도 원수인 옛 사람의 목숨을 말합니다. 그 결과 주님 앞에서 악을 제하게 되면 우리가 영광의 의를 받게 됨으로 우리의 위상이 주님의 의로서 견고하게 되기 때문입니다.(잠25:4,5)

 

 

그러나 고난 받는 자는 그 날이 다 험악하여 노심초사하며 두렵고 마치 죽을 것과도 같습니다 이는 물과 불을 통과하기 때문인데 고생이 막심하기 때문입니다.(시119:107)잠15:15.사5:30) 고난당한 성경의 위인들을 거론한다면 수가 많아서 다 말할 수 없습니다. 대표적인 인물들이 야곱 요셉 욥 다윗 다니엘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 그리고 구약의 선지자들 또 예수님과 그 제자들 그리고 지금까지 신실하게 주님을 따르던 의인들이 수많은 고난과 시험과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과 명예를 위하여 그 백성들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푸셔서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멸망당하지 않게 하시려고 성도들을 연단하시되 은(銀)처럼 하시지 않고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여 건져주십니다.(사48:9,10) 하나님은 고난과 시험을 당하는 자들을 위로하시며 긍휼히 여기십니다 그러므로 고난 과 시험 중에도 노래하며 기뻐하게하십니다.(사49:13.약1:2-4) 특히 의인에게는 고난이 많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며 그 모든 뼈를 보호하시고 그 중에 하나도 꺾이지 않게 하십니다.(시34:19,20)

 

 

그러므로 주께서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당하지 않게 하십니다 오직 하나님은 우리가 믿을 수 있는 분이기 때문에 감당치 못할 시험을 허락지 않으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내셔서 능히 감당케 하십니다.(고전10:13) 때로는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고 단련하시기를 은을 흙 도가니에서 단련함같이 하시며 우리를 그물에 들게 하시고 어려운 짐을 우리 허리에 두셨으며 사람들로 우리 머리 위로 타고 가게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불과 물을 통행하였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서 풍부한 곳에 들어가게 하십니다.(시66:10-12)

 

 

여호와의 말씀에는 가련한 자의 눌림과 궁핍한자의 탄식을 인해 내가 이제 일어나 저를 그 원하는 안전지대에 두리라 말씀하시고 순결하며 은같이 달련된 말씀으로 그 언약을 지키셔서 저희를 세상의 육신에 속한 세대로부터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셔서 영영토록 보존하려하십니다.(시12:5-7) 그러나 고난당하는 자는 주께 기도해야합니다. 다윗왕은 나의 고난이 막심하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하소서 여호와여 내가구하오니 내 입의 낙헌제(樂獻祭) 를 드립니다. 즉 기쁨과 감사와 찬양을 드리고 주께 기도드리며 자원하는 마음으로 예배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주의 증거의 말씀으로 영원한 기업을 삼은 자에게는 주의 언약을 보이셔서 가르치시고 붙들어 살게 하시는데 우리는 주께 “나를 구원 하소서 라고 기도드려야합니다.” 그러면 주께서 고난당하는 자를 신원해주시며 궁핍한자에게 말씀을 보내시고 공의를 베풀어 주십니다 또 주님은 주를 따르는 신실한 의인이 주의 이름에 감사하며 주를 기뻐하며 그 앞에 정직히 행하는 자들로 주 앞에 거하게 하십니다.(시119:107-117,153,140:12,13)

 

 

4) 복음으로 당하는 고난.

 

 

고난의 목적은 복음을 위한 것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나라이며 하나님 자신이며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성령으로 다스림을 받는 나라 예수그리스도의 왕국을 세워서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가되어 세세토록 주님의 통치를 받는 신정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예수께서는 율법에 따라 십자가에서 수난을 받으시고 고난을 당하셨습니다.(히5:7-9.계11:15)

 

 

또한 세상에 속한 모든 자들은 주님의 나라와 그 왕국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십자가에 버리는 심판을 당함으로 고난을 당해야합니다. 고난을 당하지 않고는 주님의 율례를 배우지 못합니다. 즉 고난당하기 전에는 자기 목숨을 버리고 부인해야할 것에 대한 이유를 잘 알 수가 없습니다. 이에 주께서 주시는 고난의 쇠 풀무 불과 물을 통과해 자신에게 있는 부패한 육신의 연약하고 정욕적인 목숨이 있음을 알게 되고 주님께 자신의 자아를 십자가의 죽음에 내어드림으로 주님의 새 생명을 얻는 계기가 됩니다.

 

 

예수께서도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습니다. 그가 아들이라도 받으신 고난을 순종함으로 배워서 온전케 되었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그 결과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대제사장이 되어 새 언약의 중보자가 되어 우리가 첫 언약인 율법으로 범죄 한 모든 죄를 속죄하시려고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고 부르심을 입은 자들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히5:7-10,9:15)

 

 

이와 같이 주께서 고난을 당하심으로 우리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영문 밖으로 나아가 주님의 십자가에서 자신을 부인하기위해 고난을 받아야합니다. 또 우리가 이제는 주님의 몸인 교회와 왕국인 그 나라를 이루기 위해 해산의 수고로 고난을 당해야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예수께서 그리고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전하게 되면 핍박이 따릅니다. 그 이유는 예수께서도 말씀하신 것과 같이 의(義)를 위하여 핍박을 받게 되며 또 세상에 속하지 않음으로 세상이 미워하게 됩니다.

 

 

이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핍박하였기 때문에 그 제자들도 핍박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말씀을 사람들이 지켰고 또 그 제자들의 말도 사람들이 지킬 것이기 때문입니다.(마5:10.요15:19,20)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 나라의 후사로서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로 우리가 주님과 함께 영광을 받기위하여 고난도 받아야합니다 그러나 현재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롬7:17,18) 그러므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고난이 넘치게 되지만 또한 주님의 위로가 우리에게 넘침으로 우리가 모든 환난가운데 있는 자들을 위로하게하십니다.(고후1:4,5)

 

 

이제는 우리가 주님과 한 몸이 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우리의 육체에 채워야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주님의 교회의 일군된 것은 세상의 육체에 속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님을 영접하여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로 건축하여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나라의 몸인 신령과 진정으로 산제사 드리는 예배 자가 되게 해야 합니다.(롬12:1.골골1:24,25)

 

 

이에 우리가 먼저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일군이 된 것은 하나님의 경륜에 따라 그의 말씀을 이루어야하며 감추었던 비밀인 영광의 예수그리스도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의 말씀으로 가르쳐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완전한자로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우리가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게 하셨고 주께서 우리 안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역사를 따라 힘과 수고를 다해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중매해야합니다.(고전4:15.고후11:2.골1:22,26-29)

 

 

우리가 받은 복음은 주님과 그의 사도들과 주의 신실한 종들이 고난을 받으며 우리에게 전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님 우리 모두가 이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으며 주님의 나라와 그 몸인 교회를 이루어 주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하시는 주인공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드립니다.

 

 

 

아 멘

 

 

 

 

작 성 자    왕 종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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