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생명의 행진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3)

고명한자 2010. 10. 9. 09:30

 

새 생명(生命)가운데서 행(行) 하게 하려 함이니라. (3)                                              (154)

 

 

롬6:10-14,

 

 

예수께서 죽으신 것은 하나님의 율법과 그의 말씀을 좇아 사랑의 계명을 이루기 위해 우리의 유월절 양으로 희생(犧牲)이 되셨으며 이는 그의 백성들이 죄가 없는 무죄한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해 묵은 누룩을 버리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본래 누룩이 없는 자입니다.(고전5:7)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어기고 율법을 범하여 우상으로 범죄 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어느 때에야 능히 무죄하겠느냐고 질문하십니다.(호8:5)

 

 

그러므로 예수께서 죽으신 것은 그가 자기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셔서 부정한 것들과 거치고 넘어지게 하는 것을 거두어내어 의롭게 무죄하게 거룩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마1:21.히10:14) 그러므로 주님의 죽으심으로 구속받은 성도들은 의에 병기로 하나님께 자신을 드려야합니다. 그리고 다시는 몸의 사욕을 좇아 불의의 병기가 되지 말아야 할 것은 죄가 우리를 주관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10,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에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예수그리스도의 수난은 이사야를 통해 예언한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셔서 장사 지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고전15:3,4) 이는 또 스갸랴 선지자로 예언하신 여호와의 종, 순을 그 백성 이스라엘에게서 나게 하실 것을 예언하셨고 그 약속하신대로 일곱 눈인 성령의 역사로 반석 되신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인(印)을 쳐서 새길 것(성령의 인침)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 만에 제(除)하리라 약속하셨습니다.(슥3:8,9)

 

 

주님은 성경을 이루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는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제사장으로 오셨습니다. 주님은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지 않고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오셨습니다.(히7:15,16) 이는 한사람 아담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죄와 육체가운데 세상에 속해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율법으로 정죄와 저주를 받고 레위지파를 통한제사장을 세워 계명의 연약한 제의를 행했으나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케 못하였습니다.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긴 것은 예수께서 맹세로 뉘우치지 않고 후회 할 것 없는 영원한 제사장이 되셨습니다.(히7:15-21)

 

 

이는 우리를 위하여 주님이 온전하시고 완전한 제사장이 되셔서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습니다. 전에 제사장은 온전치 못하여 자주 갈리었지만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이 갈리지 않습니다.(히7:24) 그러므로 주님은 전에 제사장처럼 자기를 위해 그리고 백성들을 위해 날마다 자주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는 것이

이는 주님이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습니다.(히7:27)

 

 

주님은 그러나 우리 때문에 육체에 죄를 정하시고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우리가 육신의 연약한 가운데 싸여있어서(로6:19) 우리가 연약함으로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없어서 주님이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롬8:3)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육체를 입으셨을 때는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나셨고 우리도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약하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셔서 그와 함께 살게 하셨습니다.(고후13:4) 주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성결의 영(성령)으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습니다.(롬1:4.히5:7-9)

 

 

11,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자로 여길 지어다.

 

 

바울은 죽고 사는 법칙에 대해 가정적(假定的)으로 설명하는데 여기서는 죄에 대하여 너희도 죽은 자로 여기라고 말합니다. 가정이란 결론에 앞서서 조건이나 전제를 내세워 결론을 말하려 한 것입니다. 즉 여기라 이는 우리가 아직은 우리 내면에 있는 육체의 정욕의 마음이 아직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바울을 통해 증언한 복음을 듣고 예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의 사건을 우리가 먼저 알아야할 필요가 있음을 말하며 이와 같은 믿음이 있어야할 것을 전재로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앎(헬>기노스코: 깊이 아는 것) 이는 부부의 성(性)을 들어서 설명할 정도로 서로 간에 아는 것을 말합니다.(요17:3)

 

 

이는 우리에게 이와 같은 믿음을 요구하는 말씀입니다. 여기라(앎) 이는 실상은 예수께서 이루신 십자가의 사건은 온 인류를 위한 역사적인 사건이지만 모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이루신 실제적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편에서는 이미 이루신 사건임에도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이 그 사실을 알고 믿어야할 필요가 있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의 명대로 너희가 스스로 할례를 받으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뜻대로 우리가 육신의 마음에 할례 받아 옛 사람과 죄와 마귀와 세상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속해야겠다는 믿음이 우리에게 요구됩니다.(렘4:4)

 

 

그러므로 우리가 마음에 할례(침례) 받기를 원하여 주님께 우리자신을 드리면 주님이 십자가에 능력으로 할례를 베풀어주셔서 우리가 세상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며 그리스도 안으로 돌아와 영원한 생명의 성령을 주셔서 하나님에 대하여 살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자로 여기고 예수님이 살아나실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산자로 여기라는 가정적인 말씀은 주님은 역사적으로 실제로 체현하신 사건이며 다 이루신 사건이지만 이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전재로 우리의 믿음이 요구됩니다.

 

 

이와 같은 말씀을 이사야로 말씀하셨습니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 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너는 나로 기억이 나게 하고 서로 변론하자고하십니다. 이는 하나님 쪽에서 먼저 사죄의 은총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내게 와서 변론하자고 하십니다. 이는 회개하고 주님의 사죄의 은총을 구해야함을 말합니다. 이것이 십자가에서 할례 받는 사건을 말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사죄하실 준비를 이미 완료하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사죄해 달라고 하지 않고 그냥 십자가를 쳐다보기만 하고 할례 받은 줄로 여기기만하면 할례가 베풀어질까요?

 

 

주님은 내게 와서 변론하자고 하시는데요. 변론은 왜합니까? 이는 우리의 옳고 그름을 밝히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원수로 행했어도 주님을 쳐다만 보면 그냥 용서 하신다면 세상사람 모두가 십자가 세례 없이 그냥 동네 교회 십자가만 바라보면 죄가 용서 되고 할례가 그냥 베풀어져서 만인이 구원을 받습니까?

 

 

그렇지가 않습니다. 반드시 주님 앞에 내가 죄인된 것을 고백하고 주님과 함께 세례 받아 하나님께 속하고자하는 고백이 필요합니다. 또한 주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이필요하며 마음과 정성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요구됩니다. 이와 같은 고백이 우리가 주님의 율법인 말씀을 보고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주님 앞에 말씀을 가지고 나아갈 때에 하나님이 우리의 고백하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시고 할례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호14:2)

 

 

이는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가지고 나갈 때에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義)를 가지고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으로 너는 나로 기억이 나게 하라고 하십니다. 즉 주님 앞에서 너의 고백의 말씀들을 들어보자고 하십니다.(사43:26) 그 고백을 들어보시고 우리에게 실제적인 주님이 마음에 베푸시는 할례를 베풀어주셔서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이 부활하신 성령으로 거듭나게 해주십니다.(요3:5.딛3:5) 그러므로 여기라는 것은 믿음을 요구하시는 것으로 주님의 일하심의 결과를 보게 하시기 위해 전제하신 가정적인 것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믿음의 결국인 영혼이 구원을 받아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영생하게 됩니다.

 

 

12,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이 말씀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활 가운데 필요한 분명한 분별력을 가져야 할 것을 말하며 우리의 정체성을 확고히 해야 할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세상에서 하나님께 돌아온 것을 말하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죄에서 의로움으로 마귀에게서 영원하신 성령 안으로 부패한 육신의 마음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돌아와 하늘에 속한자로 진리의 주님과 그의 성령으로 살아가는 자인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는 분명히 예수그리스도 안과 밖으로 획(劃)이 그어져 우리는 예수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아직 육신이란 몸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혈과 육신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 합니다. 우리의 육신은 영혼의 집으로 아주 귀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육신에는 오감이 있고 욕심이 있습니다. 이것이 장성하면 죄를 짓고 죄가 장성하고 사망을 낳게 됩니다.(약1:14,15) 이 육신의 마음과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이며 아담의 타락 후에 마귀에게 잡혀있고 그가 감옥으로 삼고 있습니다.(사14:17,42:7) 그러므로 우리가 이와 같은 것들에게서 해방을 받기위해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서 세례를 받아 해방되었고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들은 새 언약이신 예수그리스도 안에 그리고 성령님 안에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이와 같은 자들을 바울은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성령)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며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성령과 함께 하는 자인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육신의 몸이 있지만 그 몸의 소욕으로 살아가는 자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육체의 소욕을 대적하여 육신의 원하는 것을 하지 않고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갈5:16,17)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아가는 자들은 비록 육신이 있지만 육신의 소욕으로 살지 아니함으로 육신에 있지 않다고 증언합니다.(롬8:9)

 

 

만일 그리스도인이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육에 행실을 죽여야 산다고 말합니다.(롬8:12,13) 우리의 몸은 죄로 인해 죽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의 본거지인 육신의 몸의 소욕을 따르지 말아야할 것을 말합니다. 이 육신의 몸은 사사로운 욕심으로 죄를 범함으로 우리마음에 죄로 왕 노릇하지 못 하게하려고 합니다.(롬6:12)

 

 

우리가 육신에 있게 되면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율법과 말씀)이 육신에 있는 자를 정죄하고 사망으로 열매를 맺게 합니다.(롬7:5) 그러므로 육신을 좇지 않고 성령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짐으로 우리가 정죄 받지 아니합니다.(롬8:3,4) 이는 우리가 육신에서 벗어났고 율법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의 사람들의 정체성은 비록 육신이라는 몸에 거할지라도 실상은 우리는 성령님 안에 들어가 (전신 갑주. 예수그리스도의 옷) 그에게 싸여있기 때문에 비록 육신 안에 있는 영혼이지만 성령으로 육신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는 삶을 살기 때문에 육신에 져서 사는 자가 아닙니다.(갈5:16,17)

 

 

이제는 성령 안에서 행함으로 율법아래 있지 않고 정죄 받지 아니합니다, 이제는 성령으로 행하며 하나님처럼 살아가는 자입니다.(롬8:1,2, 갈5:18,25.밷전4:6) 그러나 만일 우리가 성령님의 인도를 거절하고 배반하여 육신을 좇아 행하면 처음 믿을 때보다 더욱 나쁜 상태가 됩니다.(벧후2:20) 이들의 실례가 노아 홍수 심판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세상의 여인들을 아내로 며느리로 맞아들여 육체가 되어 홍수심판으로 심판을 받게 되었고 성신이 그들에게서 떠났던 실례가 있습니다.(창6:1-7) 이와 같은 자들이 될 것을 경계하기위해 육신의 사사로운 욕심을 따라 순종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아가는 자들은 그 몸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집이며 성소이며 성령의 전입니다.(출15:17.고전3:9,13,6:19.고후6:16) 또한 성령의 인도와 순종의 도를 따라 살아가는 자는 그에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는 영적인 예배의 대상인 신령한 몸이 됩니다.(롬12:1) 우리의 몸은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었습니다.(고전12:13)

 

 

이 몸은 주님이 거하시는 교회이며 주님이 머리가 되셨습니다.(엡2:23.골1:18)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가 전에 우상으로 섬기던 세상 신들에게서 돌아서서 하나님께 돌아왔기 때문에 다시는 저들에게 우리 마음을 빼앗겨 죄의 종으로 불의의 병기로 드리지 말아야합니다. 우리가 그것들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드리게 되면 우리의 몸이 그에 도구가 되고 불의에 병기가 되어 생각과 말과 행실이 죄와 악행을 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행위의 온전한 것을 보이지 못하게 됨으로 원수가 되고 불순종하는 자들로 심판을 받게 됩니다.(살후2:11,12)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은혜와 사랑과 은총을 배약하지 말고 우리의 몸을 성령께서 거하시는 전으로 그의 인도를 받고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림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가 진리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영광 돌리는 자들이 되어야합니다. 그러나 많은 자들이 주님을 믿는다하지만 불의에 병기로 자신의 마음과 몸을 드려서 하나님과 원수관계를 맺고도 종교생활을 하며 하나님과 친한 관계로 알고 있으니 너무나 황당합니다.

 

 

이는 죄와 악을 행하는 것으로 율법아래 죄 아래 마귀와 세상에 속한 것으로 사망가운데 있는 불의에 병기인 것을 알지 못 합니다. 이들은 회개해야합니다. 그러나 의의 병기가 된 자들은 주님의 의와 거룩함과 성결함 진실함과 정직함과 안식과 평강과 기쁨과 하늘에 소망이 있는 자들입니다.

 

 

14, 죄가 너희를 주관(主管)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恩惠) 아래 있음이니라.

 

 

죄의 발생은 세상에 속하고 율법아래서 육신에 정욕에서 마귀의 유혹아래서 불법을 행함으로 발생됩니다. 즉 아담 안에 있는 자들에게서 발생되는 것입니다.(롬5:12) 이와 같은 자들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던 상태에서.(롬3:23) 주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을 받아 십자가에서 옛 사람이 연합하여 죽었다가 부활의 영으로 다시 살아나신 예수그리스도의 새 생명가운데 살게 되었습니다. 이는 죄에서 육신의 정욕의 마음에서 어둠의영에서 사망에서 율법에서 해방되어 새 언약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생명과 그 영으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죄가 없는 상태에서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죄가 주관 할 수 없습니다. 율법에 정죄 받을 수 없는 상태가 예수그리스도 안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죄가 너희를 주관하지 못한다고 증언합니다. 이것을 바울은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말합니다.(롬8:1)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롬8:2)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결코 정죄 받을 수 없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갈5:18) 율법 아래서만 죄가 나오지 은혜아래서는 죄가 나올 수도 주관 할 수도 없습니다. 이에 그리스도인이 죄를 범한다면 이는 아직 율법아래 있고 육신에 있고 죄 아래 사망과 세상에 속해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주님 안에서 새 생활을 하게 된 것은 진리 안에서 자유 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의롭고 무죄하며 거룩한 자들입니다.

 

바울은 이와 같은 자들을 의에 병기라고 말하며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합니다. 우리 모두가 의의 병기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그리스도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드립니다.

 

 

 

 

 

 

 

 

 

 

 

                                                         아 멘

 

 

 

 

 

 

 

 

 

 

작성자 왕 종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