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대하여

여성 신학

고명한자 2009. 7. 15. 22:45

 

제  목: 성 (女性神學)                        (21)

  

 신학이 역사적으로 발전되어 온 이래 여성신학은 남성 입장에서 생소한 학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유대에 전통문화에서도 여성은 소외당한 것이 사실이다.

그 이유가 창조설화중 인간타락이 여자로 말미암았고 그 결과로 여자에게 잉태하는 고통과 수고하고 자식을 낳는 일. 그리고 남편을 사모해야 하는 일. 남편에 다스림을 받아야하는 일이다.(창3:16)


  그러나 남자는 뼈 중에 뼈요 살 중의 살인 여자를 취하고. 한 몸 하나 지켜내지 못하고 공범자가 되는 가하면.

그 결과에 대한 하나님의 질문에 잘못된 죄의 심각성을 회개 할 줄 모르고 책임을 전가하며 핑계를 대고 있다.

   

   이모든 결과는 그 후손은 물론이고 인류사회에 남성우월 주의로 그리고 남성중심으로 흘러온 것이 사실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뿐만 아니라 동서고금을 통해 온 인류의 역사 속에서 여성은 사회적으로. 가정에서. 교육에서. 일터에서. 차별대우를 받고. 인권 문제에서도 경시 취급 받아온 것이 사실 이었다.

  

  폭력과 성 노리개로 씨받이로 한 많은 세월을 지내오면서 많은 상처와 스트레스 받아온 여성들. 아직도 중동 회교권에서는 여성을 베일에 가두고 성적타락을 근절하기 위해. 남자나 행하는 할례를 여성에게도 행하는 모습을 회교도를 소개하는 방송에서 보았다 그것도 어린이 오. 육세 때 크리스토리를 제거한다.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지.


  나는 기독교를 믿으면서 아담을 제일 많이 욕했다. 온 인류에게 악영향을 미친 결과로 당한 저주와 고통. 나도 그 피해자 중에 하나였고. 여성들은 물론 내 어머니가 당한 고통과 어려움들.

 

  나는 아담을 대신해서. 남성들을 대표해서 여성들에게 사죄하고 싶다. 그러나 내가 사과한다고 여성의 한이 상쇄되지는 않는 다. 그래서 마지막 아담인 예수님이 오셔서 여성의 한을 상쇄하러 오셨다. 아니 보상하러 오셨다. 그분이 신원 하시고 구원하러 오셨다.

  

  여기에 부흥해서 기독교의 신학도 이제는 지각변동을 해야 한다. 정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곳이라면 재고해야한다.그러나 아직도 신학의 틀. 종교의 틀에서 교조주의에 함몰 되어있다면. 남성우월주의에서 벗어나.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분별하고. 여성을 아는 참 지혜를 가질 때다. 하나님나라는 남녀노유 빈부귀천이 없는 것이며. 누구나 주께 대하듯 해야 한다.


 여성은 하나님의 피조물이고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인 그 분의 신부다.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이며. 하나님의 나라이고. 하나님의 지성소다.


  하나님과 은밀한 교재의 대상으로. 친밀함에 탁월하며 그리고 존귀한 존재로 모든 지. 정 .의 . 를 동원해서 풍부한 사랑의 감성과 신뢰를 가지고. 신음하고 속삭이며 울부짖는 그분의 사랑의 악기다. 비록 연약한 그릇이지만 존귀 히 여겨야 하며. 하나님의 지식을 따라 동거해야하는 존재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따라 살지 못하기 때문에 1960년도에 신-여권주의 운동(neo-feminism)이 여성의 지휘의 인권향상. 법적. 제도적 권리의 확보를 위한 여성운동이 전개 되었고. 여성사고의 새 인식 전환이 필요했다. 여성운동을 학문으로 체계화함으로 권익을 회복하는 한편 성차별을 비판 성찰하고 남성 중심적인 해석에서 여성해방 지향적인 운동으로 전개하게 되었다


  기독교의 여성신학자들도 이 영향으로 교회 내에 성차별과 제도. 의식. 성서 해석. 교리와 전통을 들어 차별하는 것에 여성들을 인간화 하는 움직임을 學으로 이론화하게 되었다. 여기에 여성학과 여성신학이 접목되게 되었다. 이 운동은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여성과 동반하는 포괄적 사회로 방향전환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운동에 자유주의. 사회주의. 급진주의. 여성해방론들이 주창하게 되었다. 그러나 긍정적인 내용이 있지만 부작용도 있다. 그러나 총체적인 여성해방론은 위에 부작용을 극복하고 남성과 여성 모두가 상호성의 능력을 중시하고 각기 보여 지는 비판점을 지적. 시정. 새로운 방향으로 남녀 모두를 해방으로 이끌고자 하는 것이다.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위한 방법으로 세유형론이 지닌 가치를 수용 새로운 전망으로 사회를 점진적으로 개혁해 나아가는 것이다. 


  이 페미니즘은 성 차별로 불평등한 요소를 여성에게서 해방시키는 운동임과 동시에 남성중심의 사회 체계에 대한 문화비평. 가부장제도 비평. 등으로 궁극적으로 여. 남 포괄체계로 체제를 형성하고자 하는 운동이며. 이 바탕에서 성서를 여성의 시각에서 본래적 뜻을 따라 모든 성별. 인종별. 계급별. 차이를 극복하여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여성신학은 여성의 이상적인 함의와 신학이 내포된다.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고 여성 해방의 쟁의 가 포함한 여성으로. 여성의 주체성을 기반으로 여성의 인간적 존엄성을 회복하는 일과 교회사상. 제도. 속에서의 성차별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에서 출발한 신학이다.


  여성신학은 여성해방운동과 달리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의 관계성 안에서 복음적이며 예수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구원의 선물을 감사함으로 받아드리는 기초위에서 실천적 과제를 수행하는데서 출발해야한다.


# 여성신학 기본적 특성

*비판신학으로서 여성신학: 기독교신학과 전통이 소외와 억압을 합리화하는데 일조함을 비판. 분석. 제도를 개선하는데 변증법적 과정을 적용 신인관계와 경험을 비추어 변호하게 되고 신학성찰에 있어 비판적이 된다. 그러므로 상황적인 요인을 중시한다.

 

*해방신학으로서의 여성신학: 여성신학은 성차별과 아울러 인종. 계층. 차별과 연관되어 이에 자유와 존엄에 대한 다양한 차별로 부터해방을 추구함에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한시도다. 복음은 좋은 소식 즉 죄와 원수 그리고 저주와 사망으로부터 해방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신학은 해방신학과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여성신학의 성서해석학: 여성신학자들도 역사. 해석학. 계시 성. 등이 연관되어 있고. 분리되기 어렵고. 가치중립이나 객관적이지 아니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러나 성서 해석 기준을 성서 자체에 둘 것인가. 밖에 둘 것인가. 여기에 엘리자벳 휘오렌자는 성서 해석입장을 신화적 원형으로의 이해. 또 하나는 역사적 모형으로의 성서 관을 말하고.

 

기독교를 지배한 세 가지 유형을 신화적원형의 범주에 포함 시켰다. 

①.교리적인 성서해석.②역사적-사실적 해석 ③양식사적-편집사적 비평에 기초한 대화적- 유형이다.

휘오렌자는 위의 세 모델이 동의의 해석학에서 출발 전승의 계승에만 관심한다고 비판 하고 자신의 역사적 모형으로의 해석유형을 제시한다.


이에 대한 네 가지가있다.

①성서가 남성본위의 언어와 가부장적 사회구조를 반영하고 있다. 이에 여성해방을 위한 비판적 해석은 동의와 긍정해석이 아닌. 의심의 해석학에서 출발한다.  ②성서 자체를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시킴으로 그 절대 권위를 주장하려는 남성 중심적 성서관은 잘못이다. 역사적 사실성의 해석이 아니라 선포의 해석학을 전개한다. ③회상의 해석학 ④ 창조적 실현의 해석학을 지향한다. 의심과 선포와 회상을 지나 미래를 새롭게 건설해 나가는 단계다.


이외에도 도그마인 기독교의 조직신학의 신론. 인간론 등의 외에 많은 내용들이 여성입장에서 재해석 되어야 할 내용들이 있다. 여기에 따른 여러 가지 이론들이 분분하다.


나는 남성으로 트랜스 잰더는 아니다 그러나 여성신학을 접하고 보니 여성들이 역사적 . 사회적. 교회적. 가정적으로 소외당한 것이 사실이고 특히 교회 내에서도 보수주의. 근본주의 입장에서 유교문화와 맞물려 여성에 대한 불평등의 결과를 초래 한 것이 사실이다.


즉 내세 지향적. 육체 경시풍조. 부성 하나님의 고정관념. 축자영감설의 문자적 해석법. 십자가 수난으로 무조건 인내해야한다는 미덕. 외에도 샤머니즘 적인 순종과 복종의 강요. 여성 사역자에 안수문제 등 풀어야 할 내용들이 끝이 없다. 다 언급하기에는 지면과 시간이 없다.


결   론:

여성 신학이 태동되고 발전되고 있음에 큰 박수를 보내며 많은 당위성 있는 이론이 체계. 정리되어 인식의 변화와 여성의 권리가 인정되고 남성도 고루한 틀에서 벗어나 여성을 창조의 질서를 따라 여성을 동반자로 대우하며 교회에서도 여성 사역자의 사역을 인정하고 합력하여 하나님 나라를 세워 나가야한다.


  그러나 구습을 벗어 버리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그 배후에 이세벨의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 세력은 창조 전부터 하나님을 반역한 세력인데 지금도 전 세계 각 교회와 신학 및 교리의 도그마로 성도를 특히 여성을 억압하고 희생을 강요 하고 있다.


  여기에 교회 지도자들이 한 목 한다. 그것은 복음의 변질이다. 복음의 변질은 자기중심적 이 되고. 죄에 종노릇하며. 마귀에 종노릇하고 성도를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치고. 교인하나를 얻어 배나 지옥 자식으로 만들며. 의문에 묶어두고. 죄에 종노릇 하게하고. 마귀에 종노릇 하게하며. 율법에 저주 받게 한다. 다시 말하면 육에서 완전히 떠나지 못한다는 속이는 교리다. 이 교리가 교회 내에 있는 한은 여성신학은 결코 발전할 수도. 창조의 질서가 회복되는 것은 기대 할 수도 없다고 말 할 수 있다.


  참 복음은 머리만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까지 회개하여 죄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 마음의 할례 즉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으므로 자기가 완전히 부인 될 때 만 가능하다.

빛 가운데 살아가는 즉 하나님 안에. 그리스도 안에. 성령님 안에서 살아 갈 때 만 가능하다. 성도 개인이 하나님의 본질적 생명의 통치를 받을 때만이. 여성신학에 관심을 기울이고 여성을 대할 때 주께 대하듯 할 것이다.


  많은 좋은 이론이 있어도 지켜지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다 좋은 말씀이다. 그러나 인간이 지킬 수 없고. 하나님만이 지킬 수 있기에 우리가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 안에 있을 때만이. 성령님이 말씀을 지키게 하신다.

여성신학의 좋은 이론도 인간의 의지로는 지켜내지도. 관철시키지도 못한다.


  그러므로 여성들이여 완전한 성화의 복음을 받고 그 안에서 전능한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께 호소함으로 하나님이 성도들을 성화 시키므로 그 안에서 여성신학이 “여성이 되도록”남성이 여성을 위하여 목숨을 버릴 수 있도록 교회만이라도. 성도들만이 라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만이 라도 그렇게 되기를 간구하고 도고 할 때입니다.


여성신학의 발전.

여성의 인격적 예우.

여성의 자리.

여성의 권리가 회복이 되어 지기를 바라면서. 

남성과 함께 하나님 나라의 회복과 부흥의 파트너로서.

당당하게 동역하는 동역자로서 우뚝 서기를 기도 합니다.

                                                        

 

 

 

                                                                   <  아  멘 >


 

 

작성자      왕   종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