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바울의 신앙

사도중에 지극히 작은 자 바울.

고명한자 2012. 2. 15. 13:06

 

사도(使徒) 중에 지극히 작은 자 바울.

 

고전15:9-11.

 

9,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 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恩惠)로라. 11, 그러므로 내나 저희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가 이 같이 믿었느니라.

 

예수그리스도의 종 사도바울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택하시고 부르셔서 보내심(헬>apostolos)을 받고 자신의 사도된 직분(職分)을 영광(榮光)스럽게 여기고 충성한 사람입니다.(롬1:1,10:13) 그러나 그는 사도 콤플랙스(complex열등의식)가 있었습니다. 그 원인은 전에 유대교에서 하나님께 열심으로 무엇을 한다고는 했지만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알지 못했고 믿지 못해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서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했습니다.(롬10:3.딤전1:13)

 

그 결과 그는 스데반 집사의 설교 후에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 때에 증인으로 있었으며 당시 사울이었던 바울은 그의 죽음에 대하여 마땅히 여겼습니다. 그 날에 사울이 기독교인들을 잡아 예수그리스도의 교회를 파괴하고 집집마다 들어가서 남자들과 여자들을 끌어내어 감옥에 넘겨주었습니다.(행7:58,8:1-3) 이일 후에 주의 영께서 다메섹에서 사도바울을 만나시고 그를 변화시키셔서 그를 사도와 하나님의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롬1:1.고전3:9)

 

그러나 그는 전에는 자기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했던 훼방자요 핍박자요 폭행자로 행한 죄악 된 모습을 기억하고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魁首)로서 자기(自己)의 의(義)를 들어내어 주님의 교회를 핍박하고 잔멸(殘滅)한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자신을 십자가에서 부인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매일 부인하며 영원히 부인하여 주님을 좇으면서도 전에 교회를 핍박한 것 때문에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고 칭함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라고 말합니다.(고전15:9.딤전1:13) 그는 그 자신이 사도로 부름 받고 다른 사도보다 많은 일을 했지만 항상 주님과 교회에 빚진 자의 마음이었으며 항상 자신을 낮추며 부인한 자로서 심지어 사도 중에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자 같은 자신에게도 주께서 보이셨다고 말합니다.(고전15:8) 이와 같이 자신을 돌아보는 그의 겸손은 주님의 말씀을 순종한 것입니다.

 

우리가 전에 아담 안에서 옛 언약 아래서 살 때는 세상의 풍속을 좇고 자기가 하나님처럼 마음대로 자기 의를 내세우기 위해 살았습니다. 이때는 거짓의 아비를 섬기며 자기 마음대로 육신의 목숨으로 정욕으로 행하여 죄악 된 생각과 마음으로 말과 행실에서 부패하고 더러운 옷 같은 의로 수많은 죄악을 범(犯)하며 살았으나 당면한 것은 율법의 정죄를 받고 저주받으며 황폐한 삶을 살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는 고통과 부르짖음 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신음하던 인생의 뒤안길에서 긍휼의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우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또 함께 일으키셔서 하늘 보좌에 앉히셨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셔서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하심을 후 세대에도 나타내게 하신 것입니다.(엡2:4-7,8) 이와 같은 은혜를 그가 받고 고백한 것이 “나에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 이라고 고백합니다.

 

이 은혜를 받고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했지만 내가한 것이 아니요 오직 자신과 함께하신 하나님께서 은혜로 하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그는 전에 자신이 교회를 핍박하던 과거의 잘못된 악한 자신의 행실에 대하여 미워하며 싫어하고 그 일로 인하여 “항상 예수 죽인 것” 을 “몸에 짊어지고” 항상 “예수그리스도의 생명만이 자신의 몸을 통해 나타내기 위해” “자신을 항상 부인하여 죽음에 넘기 우고” “주님의 생명이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한 것” 입니다.(고후4:10,11)

 

이 말은 우리에게서 “옛사람의 생각과 행실은 사망의 결과” 를 “그 몸에서 나타내므로 십자가에 예수님과 함께 죽음에 넘기 우고” “항상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의 말과 행실과 몸에서 나타내시도록” “항상 자신을 부인하여 십자가의 죽음에 넘기 우고” 우리 “죽을 몸에서 주님의 착한 행실만이 나타내야한다는 것” 입니다. 그러나 “그 행실의 능력의 주체는 예수그리스도의 영의 능력으로만” 됩니다. 이것이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해 “행함 있는 믿음으로 행위의 온전한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슥4:6.빌4:13.약3:2:33.벧전4:6)

 

이와 같이 항상 우리에게서 십자가의 심판의 능력이 우리 옛 사람을 죽이고 장사지내 멸하고 없이하여 제하게 되면 “항상 사망당하는 역사”가 우리 안에서 역사하여 “늘 자신이 부인되어집니다.” 그래야 예수의 영이 우리 안에서 자유롭게 역사하시고 능력을 베푸시고 우리가 온전케 되며 우리 몸에서 생명으로 역사하십니다. 이와 같은 사람들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 그 들은 사람들에게서 생명이 역사함으로 열매가 맺고 생명이 그들 안에서 역사하십니다.(고후4:12)

 

이와 같이 그는 의를 좇아 주님을 구하는 자였지만 또 위대한 역사를 행하는 하나님의 동역자이지만 사도바울은 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너희를 옛 세상에서 떠낸 반석(盤石)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해 보라고 말씀한신대로 사도바울은 전에 주님을 믿지 아니했을 때 알지 못하고 행한 교회의 핍박(逼迫)자였을 때를 그는 늘 생각하고 자기가 사도라 칭(稱)함을 감당치 못할 자라고 자기 자신을 자책(自責)하며 주님과 성도들에게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사51:1.고전15:9)

 

그러나 그 후 그는 나에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말하며 자신이 다른 사도들보다 더욱 작은 자이며 만삭(滿朔)되지 못한 자라고 자신을 낮추고 겸손한 마음을 나타냈기 때문에 더 위대한 사도였음이 분명합니다. 그는 후에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본받아 거룩하게 된 자로서 다른 제자들에게도 너희는 나를 본받으라고 당당히 말했습니다.(고전11:1.빌3:17) 그리고 그는 자기가 전하는 복음이나 다른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이나 일반으로 너희가 듣고 이같이 믿었다고 사도사역의 통일성(統一性)을 말합니다.(고전15:11)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은 겸손한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교만한자를 대적하십니다. 우리는 사도바울과 같이 전에 세상에서 행하던 일에 대하여 부끄럽게 여기고 다시는 그와 같은 일을 답습(踏襲)하지 말고 이제는 자신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자로 여기며 항상 십자가의 죽음에 자신을 넘기고 부인해서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만 나타나시도록 우리 몸을 산제사로 드리며 우리도 주 안에서 지극히 작은 자인 것을 알고 겸손히 주를 좇아야할 것입니다.(롬12:1,2)

 

 

우리 모두가 이와 같은 은혜를 받고 그 영으로 행해 주님께 영광 돌리시는 모든 분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작성자    왕    종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