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사랑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큰 사랑이 없다.

고명한자 2010. 8. 15. 00:19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다.          (133)

 

 

요15:12-14,

12,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것이니라. 13,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너희가 나의 계명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예수께서 포도나무비유를 통해 신자들을 가지로 비유하시고 가지가 포도나무 되신 주님께 붙어있는 것을 예수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는 것으로 말씀하셨습니다.(요15:4) 그리고 예수께서 가지된 신자들 속에 들어 오셔서 과실을 많이 맺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호14:8.갈2:20) 이것은 신앙생활의 원동력(動力)이 인간의 의지로나 힘이 자원이 되기보다는 하나님과 그의 성령으로 되어지는 것을 말합니다.(잠1:23,20,21.사10:27.슥6:4) 그런데 가지(신자)가 주님을 떠나는 경우가 있다고 하십니다. 이는 누구를 말할까요?(요15:5)

 

이들은 처음에 주님의 말씀을 듣고 쉽게 받아드립니다. 그러나 세상의 유혹과 염려로 주님의 말씀을 들었으나 악한 자에게 그 마음에 뿌리 운 것을 빼앗겨버립니다.(마13:19) 이들은 그 결과로 우리의 구주되신 예수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육신의 정욕의 옛 사람)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마귀의 미혹과 세상의 재리(財利) 즉 재물과 종교를 이익의 재료로 이용하고 단체생활을 통해주어지는 연대감 소속감의 자아도취, 또한 세상의 재물 명예 권력 돈의 유혹을 이기지못하고 믿음에서 떠나는 자들을 말합니다.(딤전4:1,2)

 

이들은 다 자기의 육체의 정욕 중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중에 얽매이고 지면 진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되므로 예수께 피하였다가 다시 마귀에게 돌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들의 형편은 처음에 예수님을 믿기 전의 형편보다 그들의 저주의 상태가 더 심하게 됩니다.(벧후2:20) 의의도인 예수그리스도를 안후에 받은 거룩한 진리를 믿고 행해야하는 명령을 저버리는 것이(벧후2:21) 포도나무이신 주님을 믿었다가 죄와 불의로 다시 스스로 가지가 말라져서 사람들이(천사들)모아 불에 던져 사르게 됩니다.(요15:6)

 

신자가 처음에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일러준 말씀으로 깨끗해져서 온전하게 완전하게 되어 주님의 안에 그의 안식에 새 계명 안에 거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상태는 세상의 상징인 애굽에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광야생활이 있습니다. 이때에도 주님의 성령의 상징인 구름기둥과 불기둥과 주의 사자인 주님을 따르면 항상 승리 할 수 있었습니다.(고후2:14)

 

그러나 실패하는 자는 세상인 애굽을 늘 동경(憧憬)합니다. 그 결과 애굽에서 나온 이들의 신앙이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갈렙과 여호수아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비극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만큼 믿음은 모든 이의 것이 아닙니다.(살후3:2) 노아홍수 심판 때에도 노아의 가족만이 구원을 얻었습니다. 오늘 주님이 믿음을 소유 했다가 타락하는 자를 버리시겠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이것은 결과론적인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처음 부르셨을 때는 예수그리스도 안과 밖을 들락거립니다. 이것은 광야생활하면서 죄 아래 심판아래 율법아래 마귀의 유혹아래두십니다.(롬3:9,19,갈3:22.살후2:11,12) 그러나 온전한 믿음을 주시고 승리하게 하시는데 전제조건이 육신의 정욕을 죽이는 것입니다. 이 육신의 정욕의 마음 때문에 포도나무 되신 주님에게 등을 돌리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정욕은 아담에게서 물려받은 목숨으로 주님과 원수 관계에 있습니다.(롬8:5-8) 우리의 신앙의 성공과 실패가 이 육신의 아담의 생명을 버릴 것이냐 유지 보존하느냐에 따라 신앙의 승패가 갈리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주님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사랑이 없다고 하셨습니다.(요15:13) 무슨 말씀일까요? 강재구 소령을 말할까요? 이분은 부하의 잘못 던진 수류탄을 자신의 몸으로 덮어 스스로 목숨을 던져 장병들의 생명을 구한 숭고한 정신을 소유한분입니다. 이러한 일도 그 한 예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신 의도는 예수님과 친구가 되려면,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하는데 이에 자기 목숨인 아담 안에 있는 예수님과 원수관계에 있는 목숨, 즉 육신의 정욕의 부패한 마음을 말합니다. 즉 육체의 정욕의 마음(목숨)을 주님을 위해 십자가에 내어놓아야 할 것을 말합니다.

 

예수께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르는 자는 자기를 부인해야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즉 자기를 말씀하셨는데 자기가 곧 자기목숨입니다. 이것이 아담 안에서 육신의 부패한 생각(마음, 목숨)이지요. 이것이 친구 되신 예수님을 위해 부인되어야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눅9:23) 이것이 부인되면 주님이 귀히 쓰시는 그릇이 되기 때문입니다 즉 죄 없으신 주님이 입고 쓰시기에 합당한 옷이며 집이며 밭이며 성전이며 하늘에 예루살렘의 신부이며 포도나무의 열매 맺는 가지이기 때문입니다.(요15:5.고전3:9)

 

주님은 또한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하는 자는 잃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자기의 옛 아담 안에 부패한자아의 목숨을 말하는데 세상에 속해있고 육신의 오감에 의해 지배당해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기 때문입니다.(약1:14,15) 이 육신의 목숨이 우리에게도, 주님에게도, 무익하기 때문에 “친구 되신 주님을 위해 버리라”고 하시는데도 많은 이들이 끔직 하게들 사랑하고 있지요.

 

주님은 누구든지 “나를(예수님)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하셨습니다.(눅9:24) 이와 같이 예수님을 위하여 제 목숨인 옛 아담 안의 육신의 부패한 목숨인 자아를 버려야 하는데 버리기가 싫으십니까? 강재구소령은 자기의 동료를 위해 자신의 육신의 목숨을 버렸습니다. 이분의 버린 목숨에는 숭고한 타인을 위한 사랑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육신의 아담 안에 자아가 그냥 있는 상태라면 이는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유익이 없다고 하셨습니다.(고전13:3)

 

우리가 아담에게 물려받은 육신의 목숨은 주님과 원수관계에 있는 목숨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낸 것이 이 아담이 타락하여 물려진 원죄의 육신의 정욕의 마음이기 때문에 주님이 이 원수 된 관계를 화목하게 하시기 위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주님의 목숨을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내어 놓으셨습니다. 주님의 목숨은 어떠한 목숨일까요? 주님의 목숨은, 죄 없는 육신의 부패한 정욕의 마음이 없는 깨끗하고 흠과 점이 없는 목숨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한 유월절 희생양으로 그 몸을 번제물로 내어주셨습니다.(고전5:7) 주님은 우리위한 영혼을 속건제로 드리셨습니다.(사53:10) 주님은 우리를 위해 그의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피로 우리의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시고 하나님을 섬기게 하셨습니다.(히9:14) 이것은 주님이 흠 없는 주님의 목숨을 우리에게 내어주심으로 하나님과 육신의 죄악 된 목숨으로 원수 관계에 있던 것을 제하시고 하목하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살아나심은 주님의 목숨을 버리셔서 우리에게 부활의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은 육신의 정욕의 목숨을 버리게 하신 희생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우리의 육신의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주님이, 주님을 위해 그렇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무엇을 주저하십니까?(눅9:24)

 

이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친구 되신 주님을 위해 우리의 목숨을 십자가에 드려서 부인해 버리고, 주님의 영원한 생명을 우리의 깨끗한 마음에 모셔서 의와 공의를 행하시게 해야 많은 열매를 절로 맺게 됩니다.(호14:8.요15:4.갈2:20)

 

자기 영혼을 주님께 들인 자 중에 대표적인 사람 다윗 왕이 있습니다. 그는 주님을 의뢰하여 인자한 주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했으며 자신의 다니는 길을 알게 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이 인생의 길이 육신적인 세상의 길, 넓은 길, 사망의 길이기 때문에 이 육신의 길에 들어선 사람은 자신의 처지를 올바로 인식하기 어렵습니다.

 

항상 죄악의 길에 행하여 거짓으로 끈을 삼아 죄악을 끌며 수레 줄로 함같이

죄악을 끄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악을 선하다 선을 악하다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것을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거짓과 불의를 좋아하는 자들로 육신에 종노릇 하는 자들입니다.(사5:18,20)

 

하나님은 이와 같이 불의와 죄악을 좋아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유혹을 저희가운데 역사하게 하셔서 거짓 것을 믿게 하십니다, 이는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십니다.(살전2:11,12)

 

그러므로 다윗은 자신의 길, 세상에 속한 육신의 소욕으로 행하는 일에 대하여 알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의 영혼을 주님께 받들어 드린다고 말합니다, 즉 자신의 육신의 생명인 목숨까지도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에게 드려 자신을 부인하고 주님의 의로움을 의지합니다.(시143:8) 이것은 주님을 의지하여 주님의 의에 길로 자신을 인도해 주시기를 기대하며 주의 의로움의 길을 나의 목전에 곧게 해 달라고 의지합니다.(시5:8)

 

이는 주께서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같이 은혜로 저를 호위해 주시며 주님은 의인의 세대에 계시기 때문입니다.(시8:12,14:5)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에 큰소리로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 하나이다 하고 운명하셨습니다.(눅23:46) 이는 주님도 아버지를 존경하셨기 때문에 자신의 영혼(목숨)을 아버지 하나님께 맡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을 사랑하기위해 우리의 목숨인 육신의 마음을 주님께 다윗처럼 받들어 드려야합니다.(시143:8)

 

그리하면 주님은 우리를 위해 마음에 할례를 베푸시는데 이는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십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자기의 부패한 육신의 마음에 할례를 받아 육적 마음을 제함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겔36:26) 그 결과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시는 것을 말 합니다”.(신30:6)

 

바울은 이를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 종노릇하지 아니하려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롬6:6,8)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어버리게 되면 구원을 얻게 되며, 주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이는 친구 되신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눅9:24.요15:13)

 

이는 주님이 먼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사도는 손으로 하지 아니한 그리스도의 할례를 육적 몸을 벗는 것이라고 말합니다.(골2:11) 이것은 육신의 부패한 마음에 스스로 할례를 받아 마음 가죽을 베고 여호와께 속해야하는 것을 말합니다. “만일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여호와께 속하지 못하고 너희의 행악을 인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분노가 불같이 발하여 사르게 되리니 그것을 끌자가 없다고 하십니다.(렘4:4)

 

우리육신의 부패한 마음(목숨)을 주님을 위하여 버리지 아니하면 그 할례 받지 못한 육신의 행악을 인하여 주님의 분노가 불같이 발하십니다, 이는 육신의 목숨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기 때문입니다.(롬8:5-8) 그러나 육신의 목숨을 주님을 위해 십자가에 버리고 장사지내게 되면 “다시는 육신의 마음에 있지 않고” “성령님 안에 있다고 하십니다”.(롬8:9) 그 결과 주님의 성령으로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게 하셨습니다.(딛3:5) 이제는 우리를 양육하시는데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서 살게 하셨습니다.(딛2:11-12)

 

이것이 주님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아담 안에 자아)을 버린 자들 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원하시고,(신30:6) 주님도 원하셨습니다,(눅9:23) 이것은 계명 중에 가장 큰 중요한 계명입니다. 이것은 친구 되신 주님을 위하여 반드시 실천해야하는 사랑의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주님은 아버지께서 주님을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하시면서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한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한다고 하셨습니다.(요15:10)

 

이 친구 되신 주님을 위해 자신의 옛 자아(自我)인, 목숨을 버리는 것을 아버지 하나님의 계명이라고 하셨습니다.(요10:10) 이에 대해 주님도 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들을 위해 대속 물로 내어주셨습니다.(마20:28.막10:45) 이것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큰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따르는 자는 주님의 계명을 지켜야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고 주님도 그를 사랑하십니다.(요14:21)

 

그러므로 하나님과 주님을 위해 옛 사람의 목숨을 십자가에 내어드려서 하나님의 원수를 없이하게 되면 하나님과 주님의 사랑을 받으며 주님의 친구가 되며 우리 인간이 주님을 가장 크게 사랑해 드리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결과로 우리가 주님 안으로 영접을 받고 하나님 안에서 영원히 안식하며 완전히 온전히 거듭나서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 모두가 이와 같은 은혜가운데 들어가는 아름다운 삶이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 멘

 

 

 

작성자 왕 종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