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시인(是認)하는 삶을 삽시다. (61)
마10:16-33,
예수님은 제자들이 복음을 전할 때에 받는 박해를 대비해서 박해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은 종교 지도자들 앞에(公會)서 채찍질을 당할 것을 예언하십니다.(마10:17) 그리고 세상 정치 지도자들의 법정에 끌려가게 되는데 이것은 이방인들에게 증거 되게 하려고 하신다는 것입니다.(마10:18) 이것은 장차 교회가 그리고 참 진리의 소유자들이 종교와 세상권력자들에 의해 핍박 받을 것을 예언하신 내용입니다.
장래에는 가족 관계 속에서도 공산주의 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서로감시하고 고발하듯이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데 내어 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이러한 일은 역사 속에 로마국가의 핍박을 피해 카타콤(catacomb) 의 비밀동굴에서 예배드리고 심지어 숨어서 살며 밤에 나가서 농사를 짓고 추수를 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이 동네에서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는 주님의 말씀대로 행한 것입니다.(마10:23)
이 같은 극적인 핍박 때에 혹시 공회나, 정치적인 핍박 자들에게 잡히더라도 염려하지 말고, 그리고 무엇을 말할까 답변할 것에 대해서 걱정할 것이 없는 것은 우리 안에서 말하는 이가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님이 하신다는 것입니다.(마10:17-20)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는 그들 안에 오신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이 그들의 교사가 되셔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고,(요14:26) 주의 증거를 묵상함으로 명철하게 하셔서 나의 스승보다 승하게 하십니다,(시119:99) 모든 말할 것을 가르치십니다,(고전2:13) 또한 성령님이 가르치시는 대로 주님 안에서 거(居住) 하면, 그분이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기만 하면 됩니다.(요일2:27) 참 복음의 소유자는 예수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마10:22) 이것은 외적인 시인(是認)하는 삶입니다.
예수의 이름은 예수님 자신이십니다. 예수님은 진리이시기 때문에 어두운 세상에 오시자 어두움이 놀라버렸습니다. 강도질 한자에게 경찰관이 나타나니 놀라는 것과 같지요. 예수님은 어두움이 적(敵)입니다, 어두움역시 예수님이 적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있는 어두움을 물리치려고 빛으로 세상에 오셔서 믿는 자안에 마귀의 일을 없이하시며,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하십니다.(히2:14,15) 마귀의 일을 멸하려오셨습니다,(요일3:8) 죄를 정결케 하시고,(히1:3) 죄의 일을 없이하려고 오셨기 때문입니다.(요일3:5)
제 블로그의 글 중에는 위에 내용이 강조되고 반복 되어서 나옵니다. 그 이유는 위에 내용이 사실이고 주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그 사실을 믿으면 우리 속에서 실제가 되며 마귀와 죄에서 완전히 해방되도록 예수님이 일하실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능력을 그 권능을 믿어 드리면 주님이 실제로 우리 안에 강한 자(마귀, 귀신)를 늑탈하셔서 우리를 저들로부터 해방시키십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좇아내시고 그 믿는 자안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십니다.(마12:28)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고 하십니다.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 하리라.(막3:27.마12:29)
☆ 마귀와 귀신은 강한자입니다. 늑탈(勒奪) 이란 말은 폭력이나 위력(威力)을 써서 강탈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은 강한 자를 성령을 힘입어 내어 쫓으십니다.(마12:28) 그런데 주님의 목적은 그를 내어 쫓는데 있지 아니합니다. 주님의 목적은 강한 자가 거하던 그 집에 있고, 그 집에 세간에 있습니다. 왜입니까? 그 집과 그 집의 세간이 무엇이기에 그럴까요?
그 집은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입니다.(창1:26-28) 그리고 그 세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일반에 마음입니다.(시33:15) 또 사람의 영혼은 하나님이 함께 계셔야 합니다. 그리고 빛을 밝혀 주셔야 하는데 그래서 사람의 영혼이 여호와 하나님의 등불입니다.(잠20:27) 이것은 지혜의 영이신 하나님이 인간에 영혼의 주인으로 함께 계셔서 영혼에 밝은 선한 의로운 깨끗한 마음을 주셔야 밝아집니다. 주님이 빛을 비추어 밝게 해서 영원히 동거해 주셔야 영생을 얻게 됨을 말합니다.(미6:8.요10:28) 그래서 사람의 영혼이 여호와의 등불이라 말씀 하십니다.
또 주님의 말씀이 우리 영혼에 풍성히 거하여야합니다. 우리의 마음의 세간은 주님의 말씀이 거하시는 방(폴더)입니다.(골3:16) 주님은 우리를 만드셔서 첫 열매가 되어 첫째 부활에 참여하도록 하시기 위해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습니다.(약1:18) 우리를 물(침례, 마음의 할례)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셔서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주님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시고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엡5:26,27.딤전4:5) 우리는 이 말씀으로 옳게 분변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조명으로 되어 지며 이 말씀이 우리를 능히 든든히 세워서 유익 되게 하며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자들의 기업이 있게 하십니다.(행20:30.히4:2)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검인 말씀을 우리 마음의 방인세간에 말씀을 가져서 성령께서 얼마든지 들어 사용하시며 일하실수 있게 말씀을 가져야 합니다.(엡6:17) 예수님도 성령을 힘입어 말씀으로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자를 다 고치셨습니다.(마8:16) 이같이 주님은 우리 속에 강한 자를 강탈하셔서 어둠에 영의 감옥에 갇혀 있는 자들을 해방시키십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관심은 강한 자 늑탈하는데 있지 아니하고 만군에 여호와 네 남편 네 구속자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께서 우리를 부르시며 마치 버림을 받아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 곧 소시에 아내 되었다가 버림을 입은 자에게 함같이 하실 것임이니라 네 하나님의 말씀이니라.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리웠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의 말이니라.(사54:7) 주님이 긍휼하심으로 우리 안에 오셔서 화평케 하시는 언약을 세우시고 영원히 함께하시며 평안과 안식을 주십니다.(사54:10.요14:27.롬5:1,2.히4:3,10)
그러므로 우리의 영혼이 주님의 관심사이고 바로 너에 마음이, 나에 마음이, 우리들의 마음이 주님의 최대 관심사입니다. 그러므로 강한 자를 결박하시고 늑탈하시어서 우리영혼에 장가들러 오십니다. 주님이 거처 삼으시기를 원하십니다.(호2:19. 요14:23)
주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분간하시려 하시기보다는 하나가 되고자 하십니다.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 그러나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상전 같으면 족 하도다, 라고하십니다. 그리고 집 주인 되신 주님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마10:25)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주님의 제자들도 바알세불의 하수인정도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참 진리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이단, 마귀나 귀신 들린 자 취급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특히 무죄한 가운데 행하는 것이 주님의 제자라고 복음을 전하면 이단, 바알세불의 하수인 취급하며 미혹 당했다고 합니다.
☆ 주님은 그 제자가 주님수준의 신앙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을 의뢰하여 하나가 되어 주님과 동등한 빛 된 사역과 영광을 그 이름으로 돌리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주님보다 더 큰 것도 하리라고 격려의 말씀과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요14:12)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의지를 비우고 주님을 모시고 성령님을 의지하며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의 이름으로 행하면 주님과 같은 사역을 한다는 것입니다. 아니 그보다 더 큰일을 행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예수의 이름이 바로 주님이시기 때문에 제자들과 함께 하시던 복음 전파와 그 능력을 우리 안에 계신 주님과 그 영이 행하신 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님의 수준으로 신앙이나 능력 행함이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성도를 섬기는 것이 주님과 같은 수준이면 족하시겠다는 것입니다.(마10:25) 또한 주님은 천국 복음으로 옥에 갇혀 포로 된 자를 자유하게 하시며 많은 질병을 고치시고 마귀와 귀신을 내어 쫓아 놀라게 하셨는데도 예수님을 바알세불 이라고 했습니다. 하물며 제자들도 같은 핍박을 받을 것을 생각하셨습니다.(마10:25)
그래도 주님은 제자들을 하나님의 집에 가족으로 생각하시며 거처로 생각하셨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으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하셨습니다.(마10:27)이것은 복음의 주체가 되시며 우리 안에 계시고 동행하시는 주님의 증인으로 증거 할 때에 광명한데서 전파하라고 하십니다.
복음 전하는 자는 주님과 동행하면 빛 가운에 행하는 것입니다.(마5:14) 광명은 주님이 빛이시기 때문이지요, 주님을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은 자이기 때문에 광명에 행한다는 것입니다.(요8:2.마10:27) 무죄한 가운데 행하는 것을 말하지요.
주님의 복음을 전해서 어두움을 밝히는 자는 밝은 자가 아니면 빛의 증인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어두운 일을 행하면서 복음을 전한다면 어두운 일에 증인이지 빛에 증인, 광명에 증인은 못됩니다, 주님은 광명한 새벽별이십니다.(계22:16) 우리가 바로 광명한 주님 안에서 주님을 증거 하는 것을 말하지요 만일 어두운 일을 아직 행한다면 먼저 회개하고 내 눈에 들보를 뽑아야 형제에 티를 제거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만일 누룩이 있는 상태라면 증인되기 보다는 누룩 없는 떡이신 주님을 먼저 구하고 두드리고 찾아서 주님이 나의 광명, 나에 빛, 나에 의가 되어 주시기를 소원하고 부르짖으며 주님을 사모하면 주님이 우리영혼에 주인으로 오셔서 나의 빛, 광명이 되어 주셔서 그 광명, 그 빛 안에서 누룩 없는 상태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증인이 되게 하십니다.(마10:27)
전파할 때에 어디서 하라고요, 집 위에서 하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집은 사람이 올라가 농작물을 건조하기도하고 집안일을 지붕위에서 하도록 되었기 때문에 집 위에서 하라는 것은 주님을 증거 할 때는 사람들에게 광포(廣布)하라는 것입니다.(마11:27) 널리 알리라는 것입니다. 집안에서 속닥거리지 말고 널리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라는 것입니다.(벧전2:9)
이 증거는 예루살렘의 사람과 유대와 온 땅과 이방인에게 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라고 선전한 것이라 바울은 증언합니다.(행26:20) 그는 또 주님이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셔서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선전 하시리라 증언한 것입니다.(행26:23)
우
리의 주님은 어두움을 들어내시는 분으로 어두움의 세력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권고하십니다.(마10:26,31) 우리의 대적 자들은 우리의 육신은 죽일 수 있지만 우리의 영혼은 죽이지 못한다고 하시면서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하십니다.(마10:28,29)
참새와 같은 피조물도 하나님의 허락 하에만 떨어집니다, 우리는 주님의 생명을 소유한 자들이기 때문에 주님의 창조의 최대 관심사는 그 백성들의 영혼과 그 생명과 행복에 있습니다. 우리의 앉고 서는 것, 우리의 모든 것을 감찰하십니다.(시33:15.히4:12) 그리고 주님의 생명과 바꾸신 우리들에게 최대관심과 사랑이 있습니다.(요3:16)
그러면서 주님은 주님의 사랑과 주님의 생명을 받은 그에 백성들은 주님을 시인하는 삶을 살아야한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시인하면 주님도 하나님 앞과 천사들 앞에서 우리를 시인하시고 우리가 부인한다면 주님도 아버지 앞과 천사들 앞에서 부인하시겠다고 하십니다.(마10:32-33) 이 같은 말은 누가복음에서도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눅12:8,9)
시인이란 그 존재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 그리고 성령하나님을 알고 믿고 의지하여 나에 주인 이신 것을 인정해 드리는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는 믿음은 우리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여 주님을 주인으로 모셨다면 자기 목숨이 자기 것이 아니라 그를 구속하신 주님의 것이라는 겁니다.
당연히 우리가 주님의 생명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의 주인임을 증거하며 시인하며 살아가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라 시인 하면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8,9) 라고 증언합니다.
이것은 마음에 있는 믿음을 구체적으로 공개하는 것입니다. 타인 앞에서 자신의 믿음을 확인해 보이는 것입니다. 이 신앙고백이 없는 것은 위선이며 가짜입니다. 신앙고백을 기피하는 것은 그가 죽은 신앙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가짜 신앙고백의 소유자는 주여, 주여, 하면서 주의 일을 많이 했다고 하지만 불법을 행하므로 주님의 외면을 당합니다.(마7:21) 행악하는 자도 주님의 외면을 당합니다.(눅13:27) 우리가 주님을 부인하는 것은 말만이 아니고 행실에서도 주님을 부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죄악 된 행실은 주님을 부인하는 행위입니다. 이구동성으로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한국교회에 실정은 어떠할까요? 정말 주님의 긍휼을 받을 영혼이 얼마나 되는지 너무 너무 안타까운 실정입니다. 지도자들부터 회개하여 주님을 의지하고 죄과를 떠나서 누룩 없는 가운데 새 덩어리와 누룩 없는 떡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주인삼아 들보를 없이하고 주님을 시인하는 삶을 살아 맡겨진 영혼들에게 참 떡을 소유하도록 중매해야 하지 않을 까요?
착하고 충성된 자들은 주인이 올 때에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는 자입니다. 우리는 양 떼의 형편과 소 떼에 마음을 두고 부지런히 살피는 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잠27:23)
우리는 우리 안에 시인할 만한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증거 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것입니다. 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습니다.(요일5:10-12)하나님의 아들이 있는 곳에는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만 있어야합니다.
요한사도는 죄를 짓는 자가 있다면 하나님을 모르는 자이며,(요일3:6) 마귀에 자녀들이 나타났다고 질타합니다.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요일3:10) 그리고 하나님께 로서 난 자들은 죄를 짓지 아니한다고 말하며 이는 하나님께 로서 났기 때문이라고 증언합니다.(요일3:9)
우리가 주님을 시인할 때는 입으로 시인합니다. 마음에 있는 것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신앙의 정도에 따라 행함을 속에 들어 있는 실체대로 증거하며 행동으로 시인 하게 됩니다. 그런데 요즘 기독교인들은 가면을 아주 많이 쓰고 다닙니다, 속에는 그리스도인 인지는 모르지만 표면적으로는 아닌 것처럼 가면을 쓰고 행동합니다.
그리고 어떠어떠한 짓을 합니다. 요즘은 싸이버 상에서도 많은 주님의 말씀들이 교통됩니다. 그 기록이 실제가 아닌 것은 스스로 생각하고 삼가야 합니다. 우리가 기록한 말씀에서 벗어나 말씀을 가감하고 주님의 말씀을 벗어나면 주님의 저주를 받고 주님나라의 성에 참여함을 제함을 받게 됩니다.(계21:18-19)
그들의 증언이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빛을 보지 못한다고 합니다.(사8:20)
우리는 그동안 주님이 함께하는 제자와 그 백성들이 주님을 입으로 그리고 행동으로 시인하며 증거 하는 삶이 되어야 함에 있어서 말과 행실에서 주님에 의로우심과 주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해야 됨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죄 없는 빛 된 삶을 증거 하는 삶이 주님을 우리 안에 계신 그대로 시인하는 신앙이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비추는 다이아몬드와 같은 주님의 백성들입니다.
말과 행실에 있어 주님이 행하신 발자취를 따라가는 삶을 사시면서 주님을 시인하는 삶을 사시는 형제자매님들이 되시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축복하며 기도드립니다.
아 멘
작 성 자 왕 종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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