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기독교인.
빌2:3,4.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마음을 품어.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사도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복음을 전해 첫날부터 복음을 받고 교제함으로 그 가운데서 예수께서 구원의 착한 일을 시작하신 것을 재림하실 끝날 까지 이루실 것을 확신하며 그는 자기 안에 계신 예수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빌립보교회 형제자매들을 사모하고 사랑했습니다. 이 같은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의 증인이라고 증거 합니다.(빌1:5,6,8)
그는 빌립보교회 성도들의 기도와 예수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자신이 전(傳)한 복음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 한 줄 알았다” 고 말하며 빌립보 성도들이 구원을 받은 것이 “자신이 주께 받은 구원의 범주(cotegory)였다”. 이 말은 현대기독교인들이 생각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말을 합니다. 어떻게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이 자신의 구원이라 말할까요?(빌1:19)
* 그는 또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다.(빌1:21)
* 그는 또 “내가” 두 사이에 끼었다, 죽어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고 싶은 욕망과 그냥 육신에 거하며 빌립보 성도들에게 복음으로 유익하게 하는 것 이라고 증언해 자신의 의지(意志)의 생각(마음)을 피력(披瀝)합니다.(빌1:23,24)
또 그는 비록 감옥에 갇혀 있지만 다시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것을 확실히 안다고 말하며.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빌립보 형제들을 자랑하며 자신으로 인해 풍성하게 하려한다고 말합니다.(빌1:25,26)
바울사도는 여러 번 “내가, 내가” 하며 “자신이 복음으로” 빌립보 교회를 “구원(救援)했으며” 또 자신이 빌립보교회 형제들에게 그들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해 함께 거하여 어떤 영향력(풍성케)을 행사해야하겠다고 밝힙니다.(빌1:25) 그는 실제로 자신 안에 예수그리스도의 심장(마음,생각)이 있고 그는 그리스도께서 자신 안에 성령으로 살고계신다고 증언하며 성령의 도우심으로 성도들이 자신의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안다고 말합니다.(빌1:8,19)
이와 같은 말은 현대 기독교인들이 들었을 때에 의구심(疑懼心)을 가질 수 있는 말입니다. 어떻게 성령님과 예수께서 직접계시(直接啓示)로 명(命)하지 않은 말들을 마구할까요? 자신이 구원의 주체처럼 말하고 삶과 죽음을 마치 선택할 것처럼 말할까요? 예수그리스도와 그 영(靈)의 명령(命令)이 아닌, 자기가 주체로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 같이 말합니다.(빌1:23-26)
어떤 형제는 그 자신의 질문에 대하여, 필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개인적인 소신(所信)을 조금 말했더니 어찌해서 성경의 말씀이 아닌, 필자 자신의 생각으로 말하느냐고 말합니다. 마치 율법 주의적으로, 교조주의적으로 마치 말씀으로만 말하고 주님이 말씀하지 않은 말은 말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냐? 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마치 주님의 허수아비로 생각하고 모든 것을 주님의 명령이 떨어져야만 말하고 행동하는 자들로 압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주님 안에서 우리 자신의 인격도 무시된 체 오로지 주님 홀로 생각하고 행동하게하시는 로봇(robot) 같은 자이기를 원하시지 아니합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마음껏 주님의 말씀으로 하나 되어 주님을 표현하고 또 주님이 주신 증거로 변화된 자신의 인격(마음과 생각)으로 주님의 뜻을 말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주 안에서 “내가, 내가”라고 말한 것 같이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내가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오신 주님은 우리와 함께하셔서 우리의 생각(마음)까지 그 지혜의 영과 지식의 말씀으로 거듭나게 하시고 새롭게 하시며 깨끗하게 하시어 주님의 생각(마음)으로 채워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시고 모든 지혜와 지식의 말씀과 생각으로 풍성케 하여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勸)하는 자(者)이기를 원하십니다.(롬15:14.고전1:5-8.딤전4:5.벧전1:23)
그런데 이와 같은 그리스도예수 안에 있는 바울은 자신이 진리로 자유 한 자이며 아무에게도 판단 받지 아니하며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할 온전(穩全)한 자이지만 이것으로 의롭다함을 얻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가 의롭게 되고 그가 주님께 받은 복음의 능력은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고전4:3,4) 그러므로 그가 자신이 구원의 주체처럼 말한 것은 주님과 하나 되었고 주님의 능력 때문입니다.(롬1:16,17)
그러나 바울은 그 복음의 능력이 자신의 것이고 그 능력을 주신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주님과 그 영이, 자신의 주인이며 자신의 영이라고 말하며 이 주님과 그 영이 내 복음이며 내 것이며 주님과 내가 하나 되었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과 복음을 전하면서 내 복음 내 구원이라고 말한 것으로 내가, 내가, 내 것이라고 마치 자신이 주체가 된 것같이 말한 것으로 복음과 주님과 자신이 하나된 것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도 이같이 말해야 되고, 말하게 되는데 이 같이 말하면 “당신이 하나님이냐? 라고 인신공격(人身攻擊)을 합니다.” 우리가 주님과 연합해서 하나 되면 주님의 생각인 말씀과 내 생각이 하나 되어 내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인지 하나님의 생각이 내 생각인지 모를 정도로 생각이 같아지고 말과 행동이 같아지게 됩니다. 이래서 예수께서 자신 안에 아버지가 계신다고 말했고 아버지와 자신이 하나라고 말했다가 유대인들에게 돌 맞을 뻔 하셨습니다.(요10:30,33)
아버지와 예수께서 하나 인 것 같이 이제는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그 영과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예수께서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을 받은 거듭난 자들에게 신(神)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시82:6.요10:34,35)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신이라고 말한 것은 하나님과 예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 이라고 “자신과 동일한 존재”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온전케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마10:24,25.눅6:40)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는 우리자신이 신(神)이라 하나님이라고 말하면 안 되지요. 다만 질그릇 가운데 보화이신 삼위일체하나님께서 그의 은혜로 오셔서 자신을 증거 해 주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자신이 하나님이라고 말하면 이상한 자들이 되고 말지요? 이와 같이 자신을 부인할 때에 우리 안에서 하나님과 주님이 높아지시고 그 영(靈)의 인도를 받게 됩니다. 이것이 자신을 부인한 자기 십자가입니다.(마16:24,25.눅9:23,24)
십자가는 저주와 심판을 말합니다. 이 자기십자가를 지라고 말한 것은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 아담의 목숨은 십자가에서 죽어 장사지내 죽은 자이고 지금 주 앞에서 살아있는 나는 새롭게 주님과 하나 된 부드러워 진 마음의 나(我)이기 때문인데 우리 안에 오신 주님만을 위하여 살아가는 자로서 자신을 영원히 부인해야할 명제로서의 자기 십자가입니다.(갈2:20)
그러므로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함이라고 바울사도가 증언합니다. 이와 같은 증언이 자기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자들이며 주님의 명령을 좇는 자들입니다.(마16:24.고후5:14,15) 그러나 이와 같은 자들은 하나님을 내 하나님이며 하나님의 의가 내의(義)가됩니다.
그래서 다윗도 시편에서 같은 증언을 말하는데 내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고 하나님의 의를 자신의 의 내의(義)라고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상(賞)주셨다고 주님의 의가 자신의 의라고 말했습니다.(시4:1,7:12,18:20) 이와 같은 말씀의 근거를 사실은 하나님이 제공하신 것입니다. 일어나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 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빛은 하나님” 이십니다.(시27:1,43:3,56:13.사60:1)
예수께서도 “자신은 세상에 빛” 이라고 말씀하시고 자신을 따르면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요8:12,12:35,36) 그러므로 주님을 마음과 생각에 주인으로 영접해 “거듭난 자들은 주님의 생명의 빛으로 빛” 이 되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너희는 세상에 빛” 이라고 말씀하시고 산 위에 동네가 숨기우지 못하리라 하셨습니다.(마5:14) 이와 같은 자들은 그 신분이 어둠인 세상과 그 주관자와 죄와 육신의 목숨에서 해방된 자들입니다.(요8:32,36.롬8:1,2)
이와 같은 자들이라야 오늘 바울이 말한 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로서 그 영 안에서 성도의 교제를 할 수 있고 신령한 자로서 다른 이들에게 판단 받을 것이 없는 자가 되어 주님과 같은 생각으로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해 한마음을 품게 됩니다. 그리고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심으로 다른 형제들을 비아냥거리거나 무시하지 않고 섬기며 오직 주님의 온유한 마음으로 그들을 그리스도의 터 위에 금과 은과 보석으로 세우게 됩니다.
그리고 주께서 택하시고 부르신 자들을 그리스도의 인내로 기다려주는 것 이것이 바울이 말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입니다.(빌2:3) 이와 같이 자기가 부인된 자들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 빛 이며, 생명이며, 삼위일체하나님을 내 하나님 내 빛 내의(義)라고 고백하여 하나된 것을 말하며 자신을 빛으로 알고 자신 속에 하나님이 주인 된 것을 아는 사람으로 그에게 듣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너의 빛이라고 말하는 자입니다.
또 이와 같은 의로운 자들을 하나님과 예수께서는 너희가 신이며 하나님이라고 말하시며 하나님과 같이 일치하는 삶을 살게 되지만 스스로는 하나님이라고 절대 말하지 않고 다만 질그릇 가운데 보배가 담겼다라고 말하는 자입니다.(고후5:7.벧전4:6) 이러한 자가 주님의 섬김의 도를 아는 자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게 되는데 예수께서도 세상에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고 오신 것이 아니요 도리어 섬기려하여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 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막10:45)
하나님도 성도섬기는 일에 대하여 아들로 우리를 섬기셨고 이제도 섬기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셨습니다.(히6:10) 그러므로 성도를 섬기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부인한 십자가를 끝까지 지고 주님을 좇아야 주님이 새로워진 마음 안에서 함께 하실 수가 있고 일하시고 역사하시며 이끌어주십니다.(롬8:9,14) 이와 같은 자들은 이제는 아무사람들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합니다. 전에는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도 육체로 오셔서 화목제물이 되신 분으로만 알았지만 이제는 부활체로 보좌에 올라가셨고 이제는 영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요6:63.고전6:17.고후3:17)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가 거듭난 성도들도 비록 육신(肉身)이라는 몸을 가지고 있으나 이제는 이들을 육체로만 볼 것이 아니라 주님의 영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영과 일체가 된 영적인 하나님의 사람들로 보라는 것이며 이와 같은 믿음으로 이제부터는 육체대로만 알지 말고 하나님의 영의 존재(神)로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온전케 되지 못한 미숙한 형제라도 그렇게 볼 수 있다면 그는 자신을 부인한자로 자기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자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자입니다.(빌2:3)
이와 같은 자들은 하나님과 같은 암 닭이지요 주님은 그 백성들을 날개 아래 품고 계신 분이지요. 이와 같은 자들은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간 자들이며 장래하나님의 나라를 희망하고 소망하며 참아 기다리는 자들입니다. 사도바울도 자기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자신이 저주를 받아 자기 생명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 지라도 원하는 바로 자기 형제와 친척이 구원 얻기를 간절히 희망하는 자입니다.(마23:37.눅13:34.롬9:3) 이와 같은 자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섬기는 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자들은 형제들이 주님께 죄 짓는 것을 감언이설과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덮어놓지 않습니다. 덮어놓으면 썩어서 더 커지고 사망당하기 때문에 버려야할 것을 촉구합니다. 그렇지 않고 연약한 것을 핑계로 자신의 상태를 인정해 달라고 말하며 죄를 범하고 있어도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말한 곳도 있으니 내가 너보다 낫기 때문에 나의 죄를 지적하지 말라고 말한다면 그에게는 말하지 않겠습니다.(약1:14)
그러나 분명히 아십시요. 예수께서 죄를 범하는 자는 아버지의 집에 영원히 거하지 못하며 의인의 회중에 들어오지 못할 것과 하늘에 예루살렘 거룩한성 밖에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약속의 유업과 기업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아야지 이것이 없으면 아무도 주님을 보지 못합니다.(시1:5,101:8.요3:36,8:34,35.히12:14계22:15)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거듭난 자라면 성령 안에서 교제함에 있어 같은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같은 사랑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마음에 만일 죄가 들어있다면 그리고 우리 안에 주님의 마음이 오셨는데 죄가 자리할 수 있다면 우리가 죄를 질수밖에 없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죄 없으신 예수님 안에 영접을 받았고 또 주님이 우리의 육신의 굳은 목숨과 죄를 영원한 속죄의 십자가의 능력으로 제하시고 마귀를 멸하시고 없이하시고 들어오셨는데 아직도 자신 안에 세상 것들이 있어서 죄가 있다면 예수께서 십자가를 헛되이 지신 것이지요?(겔11:19,36:26.롬6:6,7.갈2:17.골2:11,12)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믿고 있는 신앙을 지금점검해 보세요. 믿음이 있는가? 만일 하나님의 증거 하신 그 아들을 믿으면 어둠에 다니지 않고 진리로 자유를 얻게 된다고 말씀하셨으며 생명의 빛을 얻어 그 안에서 빛 가운데 거하기 때문에 어둠이 조금도 있지 않게 하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이고 뜻입니다. 그렇지 않고 어둠 가운데 거하며 죄를 짓는 다하면 주님과의 관계가 묘연(杳然)하다는 것입니다.(고후13:5.요일5:11,12)
그러나 우리가 분명한 주님의 증거인 그 아들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 아들을 믿으면 우리 안에 영생의 증거가 분명하게 있어서 진리이신 그의 영으로 세상 것으로부터 자유를 얻고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그리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겨서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않은 죄 범한 것을 보게 하시고 보거든 구하게 하셔서 범죄자들을 구원해 생명을 주시고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시며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해 허다한 죄를 덮게 하십니다.
이것이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일이 아니고 또 무엇이겠습니까?(요일5:16)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모두 이와 같은 사명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모든 분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작성자 왕 종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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