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생각

선한 양심을 가지라

고명한자 2009. 8. 17. 22:24

 

선한 양심을 가지라.                   (27)

 

벧전3:12-22.

12,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 하는 자들을 향 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13,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14,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저희의 두려워함을 두려워 말며 소동치말고.

15,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16,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17,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 진데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18,그리스도께서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이심을 당하시고 영으로 살리심을 받으셨니.

19,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20,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의 오래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 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더니 겨우 여덟 명이라.

21,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라.     

22,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

 

구약성서나, 신약의 복음서에서 예수께서도 양심에 대해 말씀 하신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사도행전에서, 바울서신에서, 그리고 히브리서 기자와 베드로 서신에서 양심에 대한 말이 많이 나오는데, 이 양심은 마음의 의식, 지식에 대한 변별로 선과 악, 혼란과 갈등 속에 무지를 인식하기도하고 도덕적인 양상으로 양심의 의한 부정적인 의미와 긍정적인 자기 평가를 하기도하며, 양심에는 상반된 의식이 질서와 무질서, 미래보다는 과거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고, 인간 내면에 갈등이 윤리적인 경우에는 자기 성찰에 도덕적 양심이 작용하기도 합니다. 구약 성서는 양심이라 말은 나오지 않지만 다윗은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나의 생각을 통척 하시며.(시139:2) 또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 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 지요.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오히려 주와 함께 있나이다.(시139:17-18)

 

이 생각이 바로 마음에 의식과 지식의 여러 상태를 표현하고 있는데. 바로 양심의 기능을 말합니다. 시편 기자는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시14:1,53:1)

 

이사야는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은 것을 말하며 그 마음에 불의를 품어 간사를 행하며 패역한 말로 여호와를 거스리며 주린자의 심령을 비게 하며 목마른 자의 마시게 하는 것을 없어지게 함이며. 궤휼한 자는 그 그릇이 악하여 악한 계획을 베풀어 거짓말로 가련한 자를 멸하며 빈핍한자가 말을 바르게 할지라도 그리 함이 어니와.(사32:6-7)   이 마음의 생각에 담긴 내용에 따라, 선인과 악인, 의인과 죄인,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 

정직한자와 궤사한자, 공의로운 자와 불의한자가 변별되며 행동으로 그 마음에 품은 내용이 밖으로나타납니다,

 

마음의 생각,

&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생각은 곧 지식입니다, 그분의 생각은 그분의 의지이며, 그 마음에서 입으로 나오면 말씀입니다 그분의 말씀은 항상 선한 지식이다, 한나는 그의 찬가에서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하지 말고 오만한 말도 입에서 내지 말라 여호와 하나님은 지식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행동을 달아보신다.(삼상2:3) 이 주님의 지식이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손으로 하신 일을 궁창에 나타내시며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가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시19:1-4) 주님은 그 많은 생각과 지식으로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유를 선대하시며 만유 안에 계시며, 그분은 주권적으로 택하신 자를 생각하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범죄로 인해 원망과 혼란으로 부르짖음의 아우성 소리와 그들의 죄악이 심히 큼으로 심판 받을 것을 사자들을 보내셔서 알게 하시고, 그들 가운데 있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 내어 보내셨습니다.(창19:26)

#,하나님은 야곱의 아내 라헬을 생각하셔서 그의 간절한 소원을 들으시고 태문을 여셔서 그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말하기를 나의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하고 그 이름을 요셉이라 하니 이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함이었노라.(창30:22-24)

#,한나는 엘가나의 아내로 무자하여 동서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동하여 번민하게 했다.(삼상1:6) 그는 마음이 괴로워 기도하고 통곡했다.(삼상1:10) 그는 서원기도를 드려 아들을 주시면 나실인으로 주께 드릴 것을 말하고 오래 기도했다. 그리고 엘리제사장의 오해와 그 사정을 듣고 이스라엘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자, 한나가 은혜입기를 원한다하고, 신앙의 확신과 아울러 응답받을 것을 확신하고 다시는 수색이 없었다고 합니다.(삼상1:17-18)

그 후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한나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 하였는데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삼상1:19)

#,시편기자는 주께서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우심이시오 건지시는 자시라 나의 하나님이여 지체하지 마소서.(시40:17)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나의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나의 경영한 것이 반드시 이루리라. 내가 앗수르 사람을 나의 땅에서 파하며 나에 산에서 발아래 밟으리니 그 때에 그의 멍에가 그의 이스라엘서 떠나고 그의 짐이 그들의 어깨에서 벗어질 것이라. 이것이 온 세계를 향하여 정한경영이며 이것이 열방을 향하여 편 손이라 하셨나니.


유다왕 아하스는 전능하신 주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앗수르를 의지함으로 약한 국가가 되었습니다, 주님을 의지 하면 강성한 국가로 남았을 터인데 그들은 앗수르 인들에게, 고양이 앞에 쥐의 신세가 되었습니다. 급기야 히스기야왕 당시는 앗수르 산헤립은 수리아와 에브라임을 장악하고, 반 앗수르 정책을 편 유다를 침공해 왔습니다, 히스기야왕은 여호와께 의뢰하여 주님의 능력으로 승리하게 됩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앗수르 진중에서 십팔만 오천 인을 쳤으므로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본즉 시체뿐이라.(사37:21-36)

하나님께 도전하던 앗수르는 BC621년에 바벨론에 의해서 영원히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 이 사건은 현대를 살아가는 주님에 백성에게도 큰 교훈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경영하시는 그의 백성들은 주님이 약속하신 말씀을 그대로 믿을 경우에 주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죄와 죄들, 그리고 육신의 소욕인 부정한 마음, 율법의 저주, 거짓에 아비인 마귀의 속박에서, 사망에서, 연약함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에서, 질병에서, 가난에서, 영원히 벗어나서 주님의 부활한 성령님의 생명으로 영원한 자유인으로 안식하며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경영하시는 일인데 이 사실을 믿지 아니하고 세상 신인 앗수르를 의지하고 살았던 아하스왕 같이 세상 신인, 마귀와 귀신들에 그리고 옛 사람에 종노릇하며 사는 교인들이 너무 많다. 너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신뢰하는 자들의 생각을 아시고,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시는 분이시며 때로는 심판에서 구원하시고, 무자한 가운데서 자식을 주시기도 하시며, 원수의 목전에서도 구원을 베푸시고, 죄로 인한 고통 중에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 가운데서도 구원하시며, 질병 중에서, 상한 심령가운데서 부르짖는 자의 기도와 인생의 절망 중에 긍휼을 구하는 자의 기도를 생각하시고 선을 베푸시는 분입니다. 이 같은 주님의 마음에 생각하심이 인간들의 마음에 머물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또 땅 끝에 있는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 나의 입에서 의로운 말이 나갔은즉 돌아오지 아니하나니 내게 모든 무릎이 꿇겠고 모든 혀가 맹약하리라 하였노라. 어떤 자의 내게 대한 말에 의와 힘은 여호와께만 있나니 사람들은 그에게 나아갈 것이라 무릇 그를 노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리라마는. 이스라엘 자손은 다 여호와로 의롭다 함을 얻고 자랑하리라 하느니라 하셨느니라.(사45:22-25)


주님은 흩어진 백성들을 모으시기 위하여 그분의 마음의 생각인 말씀을 보내셨습니다. 누구든지 그 말씀을 듣고 마음의 문을 열고 그분을 믿고 그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자는 그 분의 신(神)을 주십니다.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며 나의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잠1:23) 그날에 그의 무거운 짐이 네 어깨에서 떠나고 그에 멍에가 네 목에서

벗어지되 기름진 까닭에 멍에가 부러지리라.(사10:27)

 

주님의 말씀을 듣고 돌이켜 주께 돌아가는 자들에게 구약 때에도 마음 깊은 곳에 아마도 인간의 영이라는 부분을, 필자는 그곳을 양심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베드로는 거듭난 자의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했는데 육신적인 마음이 세례를 통해 벗어져 성령으로 거듭난 새롭게 된 영혼이 하나님을 찾아가서 하나로 연합되어지는 것, 이것을 베드로는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고 했습니다.(벧전1:9)


&,우리가 옛 언약 안에 즉 육신의 마음에서, 아담 안에서 죄로 인해 영적인 죽음의 상태에 서.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믿고, 그분의 보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십자가에서 연합하여 우리의 육신적인 소욕의 사람, 옛 사람 나(我)가 예수님과 함께 장사되어 주님의 보배로운 피로

 

씻음 받고 주님과 같이 삼일 만에,

성령으로 부활한 마음, 예수그리스도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을 소유한 상태가 선한 마음, 선한 양심의 상태입니다.


&, 양심은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

죽은 양심,(히9: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양심의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히9:14)  이 죽은 양심은 자연인, 아담 안에서 육신의 소욕(마음)에 있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애굽에 있는 사람들을 상징하는데, 육에 속한 사람으로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하느니라.(고전2:14)

 

불신자들은 하나님이 없다 하며,(시14:1.53:1) 그 마음에 하나님을 알만한 것을 저희 속에 보이셨고, 특히 만드신 만물을 통해 주님의 보이지 않는 영원한 능력과 신성을 분명하게 보여 알게 하셨다고 증언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존재를 부인 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롬1:19-20) 그러나 이들은 마음에 하나님두기를 싫어하지요.(롬1:28) 이 같은 자들이 죽은 양심으로 죽은 행실을 합니다.

 

불신자의 양심,(롬2:14-15)

이방인들도 본성에 양심이 있어 율법이 없어도 율법의 일을 행할 때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어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송사하며 변명하며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 를 나타냅니다.(롬2:14-15) 그러므로 옳고 그릇된 것을 말하고 윤리적이며 도덕적인 것을 통해 사회 질서를 유지합니다, 그러나 양심은 환경과, 상황과, 사건과, 형편에 따라, 편향(偏向)하지요. 때로는 그릇된 판단으로 죽은 행실이 나옵니다.

 

화인 맞은 양심,(딤전4:1-3)

그러나 성령께서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자기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 하는 자들이라.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페하라 할 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이것은 헬라의 이원론 사상으로 영혼은 선하고 물질은 악하다는 영지주의 사상으로 배후에 사단의 세력이 조종하여 금욕주의와 향락주의에 빠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들은 당시 거짓교사들이 금욕주의 사상으로 금욕하는 것으로 신앙을 판단했습니다. 주님은 물질의 주인으로, 감사함으로 취하면 버릴 것이 없다 하였으며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진다고 하셨습니다.(딤전4:4-5)

 

더러운 양심.(딛1:15-16)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저희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 부인하니 가증한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딛1:15-16)    

 

#,요15:3-4너희는 내가 일러 준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으니. 내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바울이 깨끗한 자들은 모든 것이 깨끗하다 라고 한말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을 포도나무로, 제자들을 그의 가지로 비유하시며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즉,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라는 말씀을 믿는 자들에게 하신말씀입니다, 여기에서 사망은 아담 안에서 범죄의결과 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그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사망에서 생명을 얻은 것을 말합니다, 즉 아담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으로 옮겼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아담 안에서 육적 자아인 옛 사람과 죄와 사망과 율법에 저주와 총체적인 절망가운데서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떨어 버리고, 예수님의 생명으로 부활되어 모든 것이 깨끗하게 되었다는 말씀이, 오늘 너희는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완전하고, 온전하고, 정결하며, 깨끗한, 무죄한 상태라야 주님 안에 들어가게 되며, 또 주님이 깨끗하게 된 자 안에만 들어가시게 됩니다.

 

*히브리서 기자의 증언에는 주님은 죄짓고 죄 가운데 있는 자에게서는 떠나계십니다.(히7:26) 

*바울의 증언에는 더럽고 깨끗지 아니한 자들에게는 아무것도 깨끗한 것이 없다고 합니다. 무엇을 말할까요?

 

예수를 믿는 다 시인하고 구원의 확신과 종교 생활도 합니다, 그리고 입으로 시인하지만 말과 행실 속에서 죄의 행실이 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행위로 예수님이 깨끗하다 하는 말씀을 부인하는 행위입니다. 깨끗하다 하는 자들은 그 내면이 깨끗하게 되어 죄가 없으므로 죄의 행실이 나오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아직 주님의 말씀을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내면에는 옛 사람이 주인이기 때문에, 육신의 마음으로 죄를 짓습니다, 죄는 단수로 시작 되지만 결과는 복수로 맺게 됩니다. 죄의 결과는 사망이고,(롬6:23) 장성하고,(약1:15) 육신의 마음이 죄를 짓는 것이기 때문에 율법의 정죄를 받고, 율법을 범하면, 온 율법을 모두범한 자가 됩니다.(약2:9-10)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지 못하면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불신의 육체의 마음으로 정죄 받고,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저희마음과 양심이 더럽다고 합니다.

 

이 사람들도 교회에서 목사일도 하고 중한 직분을 맡아 부지런히 일도 합니다, 그 열심을 아무도 못 따르지요. 자기 열심으로 하는 일이지요, 그러한 목사들로부터 그렇게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 부인합니다,

 

오늘날 대다수의 신자라는 사람들이 이 더러운 양심의 소유자들입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죄를 짓습니까? 가증한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린 자입니다.

 

*회개 하시고 마음에 주인 된 육신의 소욕, 육신의 아담에서 부패한 마음을 십자가에 못박아 달라고 주님에게 애원해보세요, 주님이 마음에 할례를 베푸시려고 오십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으니 내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안에 거하리라 하시며 주님이 이 글을 보시는 분의 마음에 오셔서 왕노릇 하시는데, 죄 없는 삶, 마귀가 없는 삶, 율법의 정죄가 없는 삶,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없는, 평강과 기쁨으로 살며, 의로운 삶에 핍박이 와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고 모든 시험을 이길 주님의 능력이 이 글을 보시는 분 안에 계시게 됩니다.

 

이 글을 기록한 사람이 성경말씀의 교리와 율법으로 여러분을 정죄하고 족쇠를 채워 힘들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대로 믿으니까 실제로 주님 안에는 죄 없는 참 자유와 안식이 있는 삶을 사는 것이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이기 때문에 여러분을 주님 안으로 안내하기위한 주님의 사랑에 마음으로 말씀을 드립니다. 주님의 말씀이 제게 실제로 이루어 졌기 때문에 이 말씀을 드립니다. 주님의 말씀은 말씀대로 우리가운데 이루어지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사는 삶이 쉽고 행복한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분이 이 사실을 경험 하셔야 합니다. 이것을 가로 막고 있는 방해자 어두움의 세력을 떨쳐 버리시고,

 

일어 서 세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세요, 주님의 사랑의 품으로 들어가세요. 이 블로그의 글 중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회개와, 하나님이 베푸시는 마음의 할례를 꼭 읽어 보세요 그리고 주님에게 미쳐보세요, 저는 35년 만에 주님 품으로 안식하게 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진리를 말해 주는 멘토를 만나지 못했어요. 그런데 주님이 직접 멘토가 되어 오셔서 알게 해 주셨고 참 진리를 경험하게 하셨고 이 사실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힘을 내세요 반드시 여러분에게도 저와 동일한

은혜를 주실 겁니다. 반드시,,,,,,,,,,,,,,,,,,,,,,,, 아  멘.

 

버린 양심,(딤전1:18-20)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경계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그 가운데 후메네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단에게 내어준 것은 저희로 징계를 받아 훼방하지 말게 하려 함이니라.(딤전1:18-20)

 

바울은 믿음을 따르지 아니하는 자들을 경계하며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떠나 주님을 부인하고 죽은 믿음이 되어 파선(破船) 했다고 말합니다. 이같은 자들중 후메네오, 그는 망령되고 헛된말로 진리에 대해 그릇되어 부활이 이미지나 갔다고 하며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는 자였습니다.(딤후2:17-18) 알렉산더 그는 금속을 취급하던 자로 처음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랐으나 후에 배교자가 되어 바울에게 해를 입히며 복음전할 때 주의말씀을 심히 대적 하던 자였습니다,(딤후4:14-15) 바울은 이들을 출교시켜 사단에게 내어주고 복음을 훼방하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오늘날도 타락한 믿음으로 양심을 버린 자들은 주를 욕하고 믿는 자들의 믿음을 비웃고 핍박하며 전도를 훼방합니다. 이들은 버려진 양심의 소유자입니다.

 

온전치 못한 양심,(히9:8-10)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 성소에 들어가는 길에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이 장막은 현재까지 비유니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섬기는 자로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나니.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에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둔 것이니라.(히9:8-10)


첫 언약 때에 세상에 속한 성소가 온전하였다면 새 언약이신 예수께서 오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또한 옛 언약의 성소와 장막은 비유와 그림자로 바로 온전한 장막 되신 예수그리스도의 그림자입니다, 첫 언약 때의 제사로는 사람의 양심상의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옛 언약에서, 첫 언약 안에서, 육신의 마음 안에서는 양심상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새 언약의 중보자로 오셔서, 첫 언약 때 지은 죄를 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셨습니다.(히9:15)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 아직도 옛 언약 아래서 모세의 수건을 뒤집어쓰고 육신의 마음을 벗어나지 못하고 죄 가운데서 떠나지 못하며 율법의 정죄아래 있는 자들은 온전치 못한 양심의 소유자들입니다.

 

악을 깨달은 양심은 씻음 받고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나아가게 됩니다,(히10:22)

그러므로 형제들아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가운데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며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10:22)

 

새 언약이신 예수께서는 자신의 육체가 하늘의 참 장막으로, 온전한 성소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 예수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마음에 뿌림을 받고, 성령님의 빛 비췸을 받아 양심의 악(惡)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즉 물은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밷전4:2) 하셨습니다,

 

양심에 죄악을 보고도 못 본척하는 자들이 있는데 이들에게는, 그러나 너는 말하기를 나는 무죄하니 그 진노가 참으로 내게서 떠났다 하거니와 보라 네 말이 나는 죄를 범치 아니하였다 함을 인하여 내가 너를 심판하리라.(렘2:35) 하셨고, 주님으로부터 그의 피와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주님의 마음과 성령의 부활의 생명으로 참 마음인 새로운 자아(自我) 와 온전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어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의 양심이 증거 하는 우리의 자랑.(고후1:12)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하게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이 증거 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고후1:12)

바울은 주님을 영접한 후에 하늘에 시민권 자로 세상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는 주님의 새 생명으로 인하여 세상과 구별된 하나님의 품속에서 그분의 품성으로 살고 안식하며, 의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에 삶은 죄와 육신적인 마음과 율법의 정죄와 상관없는 거룩한 삶을 살고 진실한 마음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바울자신의 양심이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 진 것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또 이러한 것은 세상의 지혜, 즉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아닙니다.(요일2:15-17) 세상 것은 세상 적이요, 정욕 적이요, 마귀 적이요,(약3:15) 바울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 진 것을 그 양심이 증거 한다고 고백합니다. 우리의 양심에도 주님의 은혜가 함께하시는 것을 자신이 알고 하나님이 아셔서 주님의 증인으로 주님을 자랑하고 나타내는 거룩한 진리의 참 믿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착한 양심을 가지라.(딤전1: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딤전1:19) 베드로는 그의 설교에서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붙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고 증언합니다.(행10:38) 바울은 첫날부터 이제 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 하노라.(빌1:5-6)

 

주님은 그 믿는 배성들에게 착한 일을 행하셨습니다. 주님은 인류 구원을 위해 악을 버리고 선을 택하시고.(사7:15-16)  우리의 질고를 지시고 슬픔을 당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징벌을 당하시고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하셨습니다,(사53:4) 우리위해 자신의 영혼을 속건 제물로 내어주셨습니다.(53:10) 주님은 모든 이를 위해 착한일을 행하셨습니다.

 

주님은 죄를 용서 하실 뿐만 아니라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내어 좇아주시고, 믿는 자 안에서 멸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우리 안에 오셔서 착한 일을 행하고 계십니다. 영원한 자유자로, 주님의 자녀로 유업을 얻도록 우리에게 착한 주님의 마음인, 주님의 착한양심을 주셔서 우리가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갈6:10)

 

깨끗한 양심,(딤전3:9)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딤전3:9)

교회의 감독과 집사의 직분에 여러 가지 기준을 말하는데, 선한 일을 사모해야하고,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하고 가장 이어야하며, 절제, 근신, 아담하고, 술을 즐기지 아니하고, 관용하고, 다투지 아니하고, 구타하지 아니하고, 돈을 사랑치 아니하고, 자기 집을 잘 다스리고, 일구이언 하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 박이지 아니하고, 등등 여러 가지 선한 행실이 있어야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깨끗한 양심이다. 이 깨끗한 양심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러준 말씀을 듣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자들, 그리고 세족식 때 이미 목욕한자, 즉 복음으로 온 몸이 깨끗한 자,  발까지 씻어서 더 씻을 필요가 없는 자,(요13:10) 또 저희 죄와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 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는 자들.(히10:17-18) 이들은 죄 사함으로 그들 마음에 양심이 깨끗하다.  그리고 믿음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복음을 믿는 자, 이들이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소유한 자라합니다.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김,(행23:1)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가로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행23:1) 바울은 유대교 출신으로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나 개종하여 이방인의 사도로 보내심을 받아,(행9:15,22:21)성도를 섬기고, 교회를 섬기는 일에 헌신 했습니다, 그는 빌립보 성도들에게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 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고 말했습니다,(빌1:8) 또한 신령한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전2:15-16)

 

바울은 주님의 명을 받들어 전환 된 주님의 심장과 주님의 마음으로 영혼 들을 주께 대하듯이 대했습니다. 그는 그의 신앙 양심이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 권했습니다.(골3:23) 그는 또한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했습니다.(골1:10-12)

 

그리고 그는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고후4:5) 바울은 범사에 주님의 마음인 주님의 양심으로 주님을 섬겼으며 성도를 섬겼고 심지어 주님을 위해 성도를 주께 대하듯 했고, 주님을 위해 성도들의 종

된 것을 전파했습니다. 이러한 일은 주님의 마음, 주님과 연합한 양심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주변을 둘러봅시다, 그리고 나를 살펴봅시다. 주변에 있는 목자가, 또 내가 바울 같이 범사에 주님이 주신 양심으로 하나님과 성도와 이웃을 섬기고 있습니까?

 

권세 자에 대한 양심,(롬13:5)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굴복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노를 인하여 할 것이 아니요 또한 양심을 인하여 할 것이라.(롬13:1,5)

권세 자는 세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주께서 정하셨으며 이를 거스림은 주님의 명을 거스리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일꾼이되어 악행 하는 자에게 법 집행을 하고 사회의 질서를 유지 하지요, 그러나 저들의 권세가 무서워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신앙 양심으로 순복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신앙까지 팔아가며 복종하라는 내용은 아닙니다, 다만 주님의 마음으로 주님의 명이기에 순종할 뿐이고 신앙의 양심으로 하라는 말입니다.

 

양심 안에 있는 고통,(롬9:1-3)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 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은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 하노니. 나의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9:1-3)


바울 사도의 마음 안에 큰 근심과 고통은 자기의 동족 이스라엘로 인한 것으로 조상들이 저희 것이요, 저들은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심,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예수께서 저희에게서 나셨으며, 주님은 만물위에 영원히 찬양받으실 하나님이셨습니다.(롬9:1-5) 그러나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요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칭하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롬9:7-8) 그러므로 이사야는 이스라엘에 관해 그 자손이 모래 같을 지라도 남은자만 구원 얻으리니.(롬9:27)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믿음으로 난의로 구원을 얻게 되었으나, 동족들은 의의 법을(율법) 좇아갔으나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이유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아니하고 행위에 의지했기 때문에 부딪히는 돌에 부딪쳤습니다.(롬9:30-33) 그들은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했습니다.(롬10:2-3) 그래서 바울은 동족의 구원을 얻게 하기위한 마음의 소원이 큰 고통으로 자리 잡고 있는데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 한다고 동족 사랑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 양심 안에 우리 민족과 친족 그리고 부르심과 청함 받은 자들은 많고, 교회에 사람 수는 많이 있지만 과연 저들이 남은 자 가운데 들어간다고 생각 하십니까? (롬9:27) 법대로 경기 하지 아니하는 자들, 너무 안타까운 한국교회의 현실입니다.

 

하나님 앞과 너희 그리고 각 사람의 양심에 알려진 우리,(고후4:2,5:11)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을 혼잡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고후4:2)  우리가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을 권하노니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고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 워 졌기를 바라노라.(고후5:11)

 

바울은 새 언약의 영에 직분을 감당함에 있어 먼저 마음 깊은 곳에 양심 속에 있는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렸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인간 내면에 있는 온갖 더러운 것,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 간음 탐욕 악독 속임 음탕 흘기는 눈 훼방 교만 광패니. 이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하셨습니다.(막7:21-23)

 

이것은 아담 안에서의 부패한 마음입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간사하게 교묘히 속이는 일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했다고 합니다. 오늘날 육적 자아인 옛 사람의 부패한 마음을 벗어버리지 아니한 자 들은 주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여 십자가의 피에 능력이 사람들의 죄를 완전히 사 하신 영원한 속죄의 피에 능력을 완전히 믿지 아니합니다.

 

지금도 완전한 주님의 사죄의  은총을 구하면 지금 주님이 오셔서 죄를 없이하시고 옛 사람의 마음을 장사,(세례) 하시고 깨끗하게 하시어 주님의 은혜로 살도록 하십니다. 바울은 이 같은 주님의 은혜로 진리를 증거하고 나타냄으로 하나님과 그와 같이한 각 사람의 양심에 알게 된 것을 상기 시키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양심에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에 주님으로 말미암아 우리 양심에 어떠함이 알려지고 있음을 알아야합니다.

 

강한 자 들의 양심과, 약한 자들의 양심,(고전8:7,10,12)

그러나 이 지식은 사람마다 가지지 못하여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 지고 더러워지느니라.(전8:7)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어찌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고전8:10)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니라.(고전8:11)


이와 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고전8:12) 바울은 강한 자들의 양심에는 우상과 우상의 제물이 아무것도 아니므로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의 일부인 음식으로 알고 자유롭게 먹을 수 있으나 그렇게 먹으려면, 강한 자의 양심이 주의를 둘러보고, 약한 자들이 우상의 제물로 알고 꺼려하는 것을 생각해서 먹지 말아야할 것을 말합니다. 만일 강한자의 양심이 약한 자 앞에서 먹을 경우 양심이 약한 자들이 따라서 먹고 스스로 정죄하고 범죄 하게 되므로 약한 자의 양심이 멸망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이러한 미묘한 자유자의 행동이 때로는 연약한 자들 앞에서 그들의 양심을 위해 조심해야 할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구원 얻었다 하면서 목사가 매주간 죄를 지은 것을, 주일날 강대상에서 오늘도 형제를 미워하고 질투하고 시기했으며 세상 것을 탐욕 했나이다. 용서하여 주십시오. 이러한 고백을 하고 교인들에게 그 같은 회개 할 것을 종용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내가 목사가 되어도 이같이 죄를 짓는데 너희 교인들이야 하면서 교인들에게 같이 죄를 짓자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다,

 

죄짓기에 담대한 마음으로 연약하여 죄에 빠지기 쉬운 약한 양심의 교인들의 양심에 죄 지을 것을 강조하고 있으니, 죄 짓는 목사나 양심이 약한 교인들이 양심이 더러워지고.(고전8:7) 교인들이 죄를 짓게 하여 양심이 상하게 하고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이 아니고 무엇입니까?(고전8:12)

 

그러므로 강한 양심의 소유자가 담대한 자기 지식으로 그 약한 자를 멸망하게 한다고 합니다.(고전8:11) 이런 일하여 지옥의 동반자로 삼는 일을 회개 하고 당장 그만두지 않으면 주님의 저주를 받게 될 것 입니다, 바울은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갈1:8) 너희를 요동케 하는 자는 심판을 받으리라고 말합니다.(갈5:10)

 

자기의 양심과 남에 양심,(고전10:25,27,28,29)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고전10:25)

당시 고린도에는 우상의 제물이 공공연하게 시장에서 거래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시장에서 거래 하려거든 자기 양심을 위해 그 물건에 대한 이미지를 생각지 말고 묻지 말고 사먹으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땅과 거기 충만 한 것이 주님의 것이기 때문이고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하매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무엇이든지 차려 놓은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고전10:27)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및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고전10:28) 불신자가 청했을 경우는 자기의 양심을 위해 묻지 말고 먹고, 만일 제물이라 말하면 알게 한자와 자기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고 권합니다. 이것은 타인에게 덕을 끼치기 위해서는 자기의 자유를 절제해야하며,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유익만은 위한 삶이 아니라 타인의 유익을 위한 삶이어야하며,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고전10:23)

 

이것은 주님과 연합해서 성령으로 사는 삶이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주님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희생적 사랑의 양심이 아니고는 행할 수 없지요,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고전10:28)

 

우리 그리스도인의 참된 목표는 우상제물 먹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있고 형편과 상황에 맞는 덕을 세우는 주님의 지혜로운 양심을 행하여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행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강한양심이 어찌 남에게 판단을 받으랴? 우리 신령한 자들은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니라.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전2:15-16)

우리가 주님의 기름부음과,(요14:16,17,23.요일2:27)

 

우리는 주님의 성령님이 가르치시고 주님의 말씀이 인도하시기 때문에 이모든 덕목에서 능히 주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의 양심을 지키고 타인의 양심을 위해 그들을 실족시키지 아니하고  오히려 연약한자들의 양심을 지켜 주게 됩니다. 그리고 타인의 양심에 우리의 인격과 사역이 그들의 양심에 기억되고 믿고 따르도록 주님의 사랑으로 알려지게 됩니다.

 

선한양심,(딤전1:19.히13:18.벧전3:16,3:21)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딤전1:19)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가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 하므로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은 확신하노니.(히13:18) 선한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벧전2:16)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벧전 3:21) 기독교인은 주님이, 전에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게 하시고. (엡4:22) 심령으로, 양심의 악을 내어버리고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새 사람을 입었습니다.(엡4:23,24)

 

즉 새로운 양심이 되어 하나님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새로운 양심은 주님의 마음과 연합되어 선악을 분별하여 악을 버리고 선을 취하는 주님의 선한 마음입니다. 이 선한양심은 선한 일을 합니다.


선한일은 무엇일 까요? 선한일은 믿음에 생명이신 주님이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셨습니다.(고후5:17) 그분은 우리의 생명으로 우리 안에서 사십니다.(갈2:20) 그리고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10)

 

우리의 선한일이란 주님의 생명 안에서 성령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갈5:25) 성령님으로 주님의 생명 안에서 살게 되면 죄와 사망과 율법의 저주에서 세상의 욕망에서 마귀의 유혹에서 옛 사람의 소욕에서 해방되어 주님의 영광으로 살아가게 되며 불신자와 진리를 비방하는 자들로 그리고 우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부끄러움을 당하게 한다는 것이 우리의 선행입니다.(엡2:10.벧전2:16)


&,우리의 선한 양심은 하나님을 찾아 가는 과정 또한 필요합니다.(벧전3:21)

#, 완전 자연인,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2:14) 이러한 사람은 자연인으로 하나님 없는 자로서 모든 가치를 육체적인데 두는 자다, 애굽인으로 비유되고, 마귀의 자녀로 사망가운데 있는 자입니다. 이 같은 자는 홍해를 건너는, 십자가 앞으로 나와야 할 필요가 있는 자입니다.

 

#,그리스도인이지만 육신에 속한 자,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를 대함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 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 하리라.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 너희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 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 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고전3:1-4)

 

이들은 그리스도인으로 구원은 받았지만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어린아이 신앙으로 육에 속한 자와는 구별되지만 때가 오래므로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하나님의 말씀에 초보로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될 자와 같이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어  어린아이 신앙으로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입니다.(히5:12-13) 이들은 처음 거듭난 자로 겨우 애굽에서 홍해를 건넌 과정입니다.

 

#,장성한 자의 신앙,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 일을 버렸노라.(고전13:11)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고전14:20)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 하 는 자들이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와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데 나아갈지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히5:14-6:3)

 

신앙의 초보 때에는 광야생활로 많은 실수를 거듭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때에도 주님은 우리가 한번 넘어지는 곳에서 일으켜 주시고, 또 일곱 번 넘어지는 곳에서 일으켜 주시고, 그리고 모든 넘어지는 곳에서 일으켜주십니다, 다만 주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자라야하지요. 이러한 연단을 거쳐 자신의 육신의 마음이 하나님과 원수관계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주님에게 육신을 없이해 달라고 간절히 갈망하고 주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을 할 때에 주님이 베푸시는 마음에 할례를 받게 됩니다.(신30:6.롬6:3-7.골2:11-12)

 

이 할례는 세례를 말하는데 요단강을 건너는 것이지요, 요단강을 건너면 길갈에 도착해 언약을 맺는데 길갈의 언약으로  애굽의 수치가 굴러가게 하셨지요.(수5:9) 이것은 이스라엘이 불순종으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여호와께서 진멸하려 했을 때 모세가 중재하며 능력의 강한 손으로 인도해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여 애굽 사람으로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 하시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소서. (출32:11-12) 애굽인과 같은 행동으로 애굽인 의 조롱을 당했던 내용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수치를 제하여 주신 것은, 우리가 주님의 백성이지만 애굽의 근성인 육신의 마음을 깨닫고 버리기를 간구하면 마음의 할례를 베푸시고 우리의 마음에 옛 사람을 없이하시고 주님의 새로운 마음을 주셔서 절대적인 주님의 능력의 손으로 지키시고,(요10:28-29)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 하십니다.(벧전1:5)

 

또한 반석위에 세우셔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게 지키십니다.(마16:18.요일5:18) 우리가 주님과 연합하여 주님으로 살고자 하는 자를 주님은 주님의 마음인 선한양심을 주시고 그 주님의 품속에서, 주님 안에서 살고자 하는 것을 선한일이라 하시며,(엡2:10) 이 같은 삶을 살고자 주님을 찾는 자를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베드로 사도는 증언하였습니다.(벧전3:21)

 

이렇게 선한 양심이 주님을 찾아 연합한자를 주님과 믿음을 화합 했다고 하며 그의 안식에 들어가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 라고 히브리 기자는 증언합니다,(히4:2,3,10) 이 같은 일은 그리스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벗어버리고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 안수 부활 등등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데 나아가는 것입니다.

(히6:1-2)

 

 이것이 장성한자의 신앙이지요. 그리고 완전한데 나아갈지니라.(히6:2)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히6:3) 필자가 이같이 되었거든요, 하나님이 허락 하셨어요. 도전이 되시지 않으세요? 얼마나 좋은지는 맛을 본 자 이외는 모르지요, 사람이 몸을 가지고 사는 것, 세상에 사는 것이 한번 뿐이지요, 주님과 친한 관계가 실제로 있거든요, 이 글을 보시는 분도 선한 양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아가 보세요. 분명히 만나 주시고, 참 자유를 주세요, 정말 행복하답니다. 이글을 보시는 모든 분에게 이와 같은 은혜가 있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아 멘

 

작 성 자  왕   종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