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바울의 신앙

달음질하여 오직 상받는 자는 하나.

고명한자 2012. 2. 23. 21:50

 

달음질하여 오직 상(賞) 얻는 자는 하나.

 

고전9:23-25.

 

사도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고 이방인의 사도로서 주 앞에 충성을 다했고 그는 복음을 위하여 다양한 모습으로 때로는 유대인과 같이, 때로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과 같이, 또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위해 다양한 모양으로 대처하여 복음으로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한 것으로 이와 같이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의도한 것입니다.

 

그는 믿음이라는 복음의 통일성(統一性)을 위하여 사람들의 다양한 출신 성향 관습 인종 학벌을 초월해 주를 믿어 복종케 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며 복음을 위해 모든 행함 있는 믿음을 보였으며 자신도 복음에 참여할뿐더러 그에게 듣는 모든 자들도 복음에 참예케 하려한 것입니다. 이에 그는 복음으로 믿음의 결국인 영혼 구원과 썩지 아니할 면류관을 얻기 위한 실례를 들어 운동장에서 경기하는 자를 들어서 설명합니다.

 

그는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전력 질주할지라도 오직 상 받는 자들은 “하나인줄을 알지 못하느냐?”고 말하여 상(賞) 받는 자의 수를 하나라고 제한합니다.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그리고 이기기를 타투는 자의 경쟁력에 대하여 그는 모든 일에 절제한다고 말하여 행동거지를 제한하며 썩지 않을 “면류관의 분명한 목표”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한다”고 말하며 또 여차하면 자신이 복음을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할까요?

 

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

 

사도바울은 복음인 예수그리스도를 받아서 자신 안에 주님의 능력이 함께 하신 것을 증거 하기를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예수 우리 주님께 감사함은 나를 충성 되게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셨다고 말했으며 그러므로 그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고백하며 그는 주님과 그의 형제들을 섬기는 일에 자신이 궁핍하거나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으며 그는 비천에도 풍부에도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운 자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사역의 동력이 능력 주시는 자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행하게 되었고 복음에 참예케 되었다고 증언합니다(사10:27.슥4:6.막9:26.빌4:11-13.딤전1:12) 이와 같이 복음(福音)에 참예(參預)한다는 것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행한다는 말인데 이와 같이 주 안에서 행하려면 “주님과 충돌 할 수 있는 세상 적이고 원수 된 육신의 모든 것들이 모두 제거되어야” 복음 안에 거(居)할 수 있습니다.(렘4:4.겔36:26.눅9:24.요15:12-14.롬6:6,7.골2:11)

 

많은 사람들이 복음에 참예했다고 말하지만 행함이 없는 참여를 합니다. 즉 예수께서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 고 말씀하셨는데 어느 도시에 불의한 재판관을 비유로 하나님께 “죽어라 강청하여 구하고 찾고 두드리며 부르짖어 기도해야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셨는데 이와 같이 과부와 같은 심정으로 기도해야 아담에 속한 죄인들의 한(恨:육신의 목숨)이 해결되기 때문인데 이것은 또 친구와 형제가 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위하여 자신의 육신의 목숨을 주님께 드림으로 아담의 목숨을 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렘33:2.눅18:1-8)

 

이 옛 언약 안에 있는 아담의 목숨이 없어야 하나님이 우리 영혼에 오실 수 있고 우리가 복음인 예수그리스도 안에 들어가 하나님의 안식에 거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이 십자가에서 부인되어야 행함으로 복음을 순종하는 것”으로 육신에 져서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게 되지만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자신을 부인하면 주의 영으로 다시 태어나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그제야 영으로 육의 행실을 죽임으로 복음에 참여함으로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게 됩니다.(롬8:13.히4:3,10)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들은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이 신앙을 하면서 상(賞) 받는 것을 상급(賞給)으로 지휘등급을 받는 것으로 해석하고, 어떤 이는 각종 우등상 정도로 해석하는 자도 있으며, 또 면류관을 받는 다고 해석하는 자도 있지만 그러나 불순종할 경우 반대급부로 벌(罰)을 받는 것으로 해석해서 벌 받는 자는 연단(演壇)을 받기위해 천년왕국으로 들어간다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상 받을 자에 대하여 운동장에서 경주하는 선수와 같이 달음질하여도 상 받는 자가 “하나” 라고 제한적인 수(數)를 말하고 있습니다.

 

&, 구약성경에서는 노아홍수 당시에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은 멸망을 받았으나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 얻은 자가 노아의 식구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창8:16.벧전3:20,벧후2:5)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서 행하신 주님의 이적을 보고도 열 번이나 시험하고 그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고 멸시한 자들은 한사람도 주께서 조상들에게 맹세로 약속한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민14:22,23.렘31:36,37.고전10:5,10.히8:9)

 

그러나 오직 “내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주님을 온전히 좇았으므로 그의 갔던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 그 후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이에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서 죽지 아니하고 살아서 약속하신 가나안땅에 들어간 사람도 “소수”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은 저희의 “다수를 기뻐하시지 아니한 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습니다.(고전10:5) 이와 같은 것에 대하여 사도바울은 “믿음은 모든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살후3:2)

 

요한사도 역시 사대교회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있어” 주님과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로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천사들 앞에서 시인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계3:4,5) 무엇 때문일까요? 하나님은 맹세로 악인이 살고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며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또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십니다.(겔33:11.딤전2:4)

 

그런데 왜 다수(多數)를 원치 아니하시고 “남은 자와 소수와 몇 명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신다.” 고 말한 것은 무엇을 말할까요? 또 달음질하는 자가 “상을 받는데 한명” 이라고 제한할까요? 사도바울은 이 상에 대하여 다음절에서 면류관이라고 말합니다. “면류관은 생명에 관련 된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좁고 협착한 길이라고 그 범위를 제한하셨습니다.”(마7:13,14) 생명의 길로 들어서서 “생명을 얻는 것이 최종 목표이기 때문에 사도바울은 달음질해야 할 것”을 제시합니다.

 

그런데 달음질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요? 인간의 자기의 의(義)로 힘써서 노력함으로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을 말할까요? 아닙니다. 사도바울이 의도하는 것은 “철저히 자기를 부인해야 할 것을 말한 것”입니다. 이 상급을 위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우리의 모든 것들을 배설물(排泄物)로 여기고 버려서 나는 부인되고 오직 “그리스도께 의를 얻고 그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 된 자신을 발견해야할 것”을 말합니다.(고후5:17.갈2:20.빌3:7-9)

 

이와 같은 것을 위해 여호와께서는 구약에서 하나님이 마음에 베푸시는 할례(割禮)를 받아야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아담 안에서 부패한 마음에 할례를 베푸시는 분은 하나님 이십니다.(신10:16,30:6) 그러므로 마음에 할례를 받아 하나님의 원수 된 관계를 청산하고 하나님께 나와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생명을 얻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에게 속(屬)하고자 하는 마음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이 결단이 곧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경주자의 자세를 말합니다.”(렘4:4.고전9:24)

 

신약에서는 “예수그리스도와 연합해서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옛 사람을 장사지내고 또 그의 살아나심을 본받아 성령으로 거듭나야 할 것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함을 얻었음이니라.(롬6:6,7) 이와 같은 결과를 얻기 위하여 “노력할 수 있는 경주자로서의 달음질이라면 우리의 옛 사람의 목숨을 예수님께 드리고 자신을 철저히 부인하여 배설물로 여기는 것”을 말합니다.(눅9:23,24.요15:13,14.빌3:7-9)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리스도인은 항상 이기고 넉넉히 이기는 자들입니다.(롬8:37.고후2:14) 그런데 우리가 “이길 수 있는 비결은 우리 안에 오신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영 이신 성령으로만 이기게” 됩니다.(슥4:6.빌4:13) 예수께서는 세상을 이기시고 그의 제자들 영혼 안에 오셔서 이기도록 도우시는 분으로 그분은 이제 영으로 성령을 통로로 우리 안에 오셨고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요6:63.롬5:5.고후3:17) 그런데 이기기를 원하는 자는 다투고 절제한다고 말합니다.

 

&, 다툰다는 것은 불화하고 대립하고 거슬리고 싸우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우리가 거듭나서 성령님의 소욕으로 살게 되면, 우리 죽은 육체의 몸속에 죄의 법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능력으로 멸하여 죄의 몸은 죽었지만 “우리의 의식인 전에 옛 사람이 죄를 범하던 기억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전에 악인으로 있을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 생각을 버리고 또 그 길을 버리고 주님께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우리가 그 생각이 기억되고 나타나서 그분이 좋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사55:6)

 

그렇다고 그 “전에 불의한 생각을 추구해서 마음에 의지로 받아드리고 좇아서 행동으로 죄를 범하지 못합니다.” 이는 죄의 근원이 제해지고 모든 죄의 권능(죄의 법과 마음의 법)이 죽었기 때문에 마음에서 죄와 악이 왕 노릇하지 못하게 주님의 생명의 영(靈)께서 신성(神性)의 능력으로 왕 노릇하십니다.(시125:3.요10:28,29.롬8:1,2.벧전1:5.요일3:8,5:18) 이는 성령님의 소욕이 육신의 소욕을 거슬려 그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십니다.(갈5:16,17)

 

그리고 자신을 부인한 자들은 하나님과 그 아들의 영이 “모든 일에” 절제하게 하십니다. 즉 우리가 주님을 의뢰(依賴) 하고 주님께 받은 의(義)를 지킬 수 있도록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십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 함이니이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이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얻고 예수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입니다.(사26:3.빌4:6,7.유1:1)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 안에 있고 또 주께서 그의 영으로 우리 안에서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 때문에 우리가 모든 일에 절제(節制)하여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않습니다.(고전4:6) 이는 우리 안에 들어오신 지혜의 영이 주님의 지식의 말씀으로 우리 영혼을 즐겁게 하며 또 근신이 우리를 지키며 명철이 우리를 보호하며 악한자의 길과 패역을 말하는 자에게서 건져내시기 때문입니다.(잠2:10-12) 그러나 “세상에 속하고 육신에 속한 자들은 어둠의 영인 우상을 섬김으로 썩을 면류관을 얻게 됩니다”.(골18,19.살후2:11,12)

 

그러나 지혜의 영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고 그 영으로 인도를 받는 자들은 그 안에서 “항상 이기고,(고후2:14) 넉넉히 이기기,(롬8:37) 때문에 의(義)에 면류관,(딤후4:8) 생명의 면류관,(약1:12.계2:10)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벧전5:4) 금(金)면류관,(계4:4,14:14)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살전2:19)이 예비 되어있어서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세상 모든 것들에 대하여 절제 하게 됩니다”. 특히 우리의 말을 위해 우리 입에 파숫군을 세우시고 지켜주십니다.(시141:3) 또

 

하나님이 그 믿는 자에게 힘으로 띠를 띠셔서 그 믿는 자의 길을 완전케 하시며 또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어주십니다.(시18:32.잠2:7) 그러므로 그 앞에 완전하여 죄악에서 스스로 지키게 하십니다.(시18:23,26:1,11,119:1-4) 주께서는 완전한자의 날을 아시고 저의 기업을 영원하게 하십니다.(시37:18) 그러므로 우리는 썩지 아니하는 면류관을 얻고자 절제하며 경주하여 약속한 유업의 상인 면류관을 받기 위해 자신을 부인하고 믿음의 경주를 하는 자들입니다.

 

26,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과 같이 아니하여.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 로라.

 

그러므로 믿음 있는 자는 마치 경주하는 자가 법을 따라 경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만일 법(法)대로 경기하지 못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딤후2:5) 그렇다고 율법에 매인 자를 말하지 않습니다. 거듭난 신앙의 소유자는 복음을 들은 첫날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착한 일은 구원 얻을 자들에 대한 하늘의 소망으로 우리가 전에 들었던 복음 곧 진리의 말씀을 말하며 이 복음을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그날부터 교제함으로 열매를 맺어 자라가게 됩니다.(빌1:5,6.골1:5,6)

 

이들은 물과 성령으로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출발하여 율법아래 있지 아니하며 성령 안에서 새로운 법 새 계명으로 서로 사랑하며 서로 짐을 지는 그리스도의 법이 있습니다.(요3:5.갈6:2.딛3:5) 첫째, 자기 옛 사람의 목숨을 주님의 십자가에 드림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가서 성취할 수 있는 계명으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목숨을 버려 우리를 사랑한 것과 같이 우리도 예수님을 사랑하여 우리 목숨을 주님께 드림으로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요14:15,15:12-15.요일3:11,14,16)

 

이것은 예수께서 우리에게 명(命)하신 법(法)으로 그의 계명입니다.(요15:14)

이와 같은 명령을 순종한 사람들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로서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로 자신의 육적인 몸을 벗어버려 육체에 지배 받지 않고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아가는 사람들로 이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우리를 위해 육체의 고난을 받으신 예수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게 되었는데 이는 온 세상의 죄를 그치셨기 때문입니다.(갈5:24,25.벧전4:1,2)

 

이에 예수께서 모든 자를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게 하신 것입니다.(고후5:14,15) 그러므로 이와 같은 자들은 자기 육신의 목숨에 지배 받는 자들이 아니라. 이제는 자신 안에 오신 그리스도의 영이신 예수님의 마음으로 그 영으로 살고 그 영으로 행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이와 같은 것을 알지 못하여 헛된 영광을 구하며 서로 격동하는 자들이 되어 방황합니다.(갈5:25,26)

 

둘째, 그리스도의 법(法)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들로 형제들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에 짐을 서로지게 되며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기 때문에 우리도 이 사랑을 알고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 목숨은 몸의 육체를 말한 다기 보다는 우리의 옛 자아를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다고 할 때에 자신에게 육신의 아담의 목숨인 자아가 있을 경우 결코 주님과 형제나 이웃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갈6:2)

 

그러므로 이웃을 사랑할 자원과 동력이 하나님의 사랑이신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이기 때문에 우리 안에 육신의 정욕의 마음을 버리고, “형제들에게도 이와 같이 육신의 목숨을 버리게 함으로 예수그리스도 안에 들어오게 해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게 하는 것”이 형제를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 형제도 역시 옛 사람의 정욕의 목숨을 버림으로 예수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이며 또 그 안에 거하여 살게 함으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 하게 합니다.(요일3:16)

 

이와 같은 일들이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고 구하는 것이며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고 이와 같은 일들이 미혹하여 진리를 떠난 자들을 돌아오게 해서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오게 함으로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일들이 우리가 형제들의 짐을 서로 지는 것입니다.(갈6:2.약5:19,20.요일5:16) 이 일을 위하여 사도바울은 자신을 쳐서 복종한다고 말합니다.

 

&, 자신을 쳐서 복종한다는 것은 역시 자신을 부인(否認)하고 항상 부인하며 영원히 부인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주님과 하나님의 의(義)만 발견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노력을 인위적으로만 한다면 우리는 곧 실패합니다. 오직 “영원히 자신을 부인 할 수 있는 능력은 주의 영을 의지해서 살아갈 때만 가능합니다.” 바울은 영으로서 육의 행실을 죽이면 산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노력으로 되는 것같이 말했지만 실상은 “오직하나님 앞에서 “진(陳)을 파하시는 성령님의 절대적인 강력(强力)한 능력” 때문에 가능합니다.(롬8:13.고후10:4-6.빌3:9)

 

&, 사역을 마친 후에 버림당할까? 두려워하는 것.

 

그런데 사도바울은 자기가 자신의 몸을 쳐서 복종(服從)케 하는 목적(目的)은 “사역(使役)으로 남에게 복음을 전파한 후에 자신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했습니다. 두려워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자신을 부인하여 세상에 속한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늘에 하나님께 속한 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자로 자신을 쳐서 복종하는 일에 실패할 경우 “하나님의 영의 사람들이 육체가 되어 주님의 영이 떠나게 될 경우”입니다. 실례는 노아 홍수에서 멸망을 당한사람들이 예가 됩니다.(창6:3) 또 불순종한 사울에게서 하나님의 신(神)이 떠난 것을 예로 들을 수 있습니다.(삼상16:14) 그러므로 우리는 불의를 행하고 불순종하지 말아야할 것이 하나님의 성령님을 근심하게하지 말아야합니다.

 

만일 지속적으로 불순종을 할 경우 사도바울은 성령을 소멸(消滅)할 것을 우려 했습니다.(살전5:19) 이는 우리가 그 안에서 구속의 날까지 인(印)치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엡4:30) 그러므로 우리가 은혜로 받은 그리스도의 영에 대하여 신앙의 정절을 지키고 믿음을 지키며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순종하여야합니다.(롬8:14) 둘째, 사도바울은 맡겨진 사역을 마치면서 밀레도에서 에베소교회 장로들 앞에서 복음 증거의 일을 마치려고 고별 설교가운데서 자신은 모든 사람들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다고 말합니다.

 

이는 자신이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했다고 말했는데 이 말은 말씀의 선포의 형평성을 말하며 율법과 복음의 말씀을 골고루 전해야하는 것은 사역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들로 영혼을 살릴 수도 있고 말씀 밖으로 넘어가 사람의 교훈(누룩)으로 먹일 경우 이들을 세상의 초등학문과 사람의 간사한 철학적 교훈으로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치면 영혼들을 실족시키며 다른 이들의 신앙을 무너뜨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이들까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가로막아 함께 멸망을 받게 합니다.(마23:13,15.행20:26,27.고전5:6-8) 이에 말씀 밖으로 넘어가 말씀을 가감하게 될 경우 성경 묵시록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신 다고 말씀하셨으며 또 생명나무와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말씀하심으로 사람의 계명으로 하나님께서 증거 하신 말씀을 제(除)하고 부인(否認)할 경우 자신의 생각과 교훈으로 거짓 증거 한 그들은 예수께서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 부인하실 것입니다.(딤후2:12.계22:18,19)

 

셋째, 우리가 전에 옛 사람을 부인하고 거듭나서 영의 새 사람을 받고 신의 성품을 받아 행위가 온전하고 완전하게 되어 새롭게 된 의인이 한번 비침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 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는데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히6:4-6,26,27.벧후)

 

넷째, 그리고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화평과 거룩함을 좇아야합니다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합니다.(히12:14) 또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들이 있는데 쓴 뿌리(죄에 연루됨)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로 인해 더러움을 입게 됩니다.(히12:15) 또 음행하는 자와 야곱의 형, 에서와 같이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망령된 자와 같은 자가 될 것을 두려워하라고 히브리서 기자가 경계합니다. 그는 후에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림을 당했고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히12:15-17)

 

이외에도 불의(不義)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遺業)으로 얻지 못합니다.(고전6:9,10) 육체의 일을 행하는 자도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갈5:19-21) 또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는 다 그리스도의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합니다.(엡5:5) 또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벧후2:20-22.계22:15) 또 같은 말씀을 예수께서도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니 죄의 종은 영원히 아버지의 집에 거하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8:34,35)

 

이와 같은 경계의 말씀들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들로 사도바울 자신이 사역을 마치고 혹여나 버림이 될까? 두려워했던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이 경계로 한 말씀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 영을 좇아가는 모든 이들에게는 하나님이 모든 능력을 동원하여 항상 지키시며 방패가 되어주시고 은밀한 가운데서 구원을 얻게 하시기 위해 항상 보호하시기 때문에 항상 이기고 넉넉히 이기게 하심으로 아무걱정이나 염려 할 필요가 없습니다.(벧전1:5,4:6)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제 우리는 인간의 노력으로는 하나님의 뜻에 거할 수 없음을 아셨을 것입니다. 오직 자신을 부인할 때에 주님이 그 영으로 우리에게 오셔서 의를 주시고 의롭게 하시며 항상 자신을 부인하는 일을 영원히 하게 하시고 우리가 주의 영을 의지해야 실족함을 허락지 않게 하시고 항상 승리할 수 있음을 아셨을 것입니다. 필자가 이와 같이 되어 주의 영의 인도로 항상 승리하며 이기고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기적적인 삶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와 같은 은혜 가운데서 소망으로 면류관의 상을 바라보며 자신을 쳐서 부인하고 항상 승리하며 넉넉히 이기시며 승리하시는 모든 형제자매님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작성자    왕    종    오